기독교 교리와 윤리 하나님의 계시
첫 강의때 들은 내용을 돌이켜 보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홀연히 나타나 셔서 그들과 동행하셨다고 한다. 또한 예수님을 라포를 형성하여 그들과 공감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라포는 말과 음성, 그리고 비언어적 행동인 바디랭귀지가 중요한데 라포를 통하여 동질감을 빨리 느낄 수도 있다고 한다. 바디랭귀지는 라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언어로 의사가 전달되는 것은 겨우 7%라고 한다. 대화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부분은 55%를 차지하는 바디랭귀지라고 한다.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의 얼굴 표정, 제스처, 그리고 동작의 종류와 질은, 말 그 자체가 주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나타낸다. 과거의 말과 내용을 주입하고자하는 광고와 달리 현대 광고에선 회사의 로고나 상품에 대해서는 보일 듯 말 듯 하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잠시 언급하고 끝맺는다고 한다. 평소 바디랭귀지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줄은 몰랐다. 의견충돌 상황에서 사람들끼리 상대방의 신체언어, 음조의 변화, 그리고 어휘선택에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신체언어는 갈등이 급속히 고조되는 주요원인이 되기도 하며 교인들과 효과적으로 의사전달을 하고 갈등을 해소해 나가는 것이 리더의 바람이기에 그렇게 하려면 리더들은 훌륭한 비언어적 전달기술을 갖추어야고 한다. 우리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학과나 우리 학교 또는 모교친구들과 빨리 친해지는 이유는 이러한 라포 때문인 것 같다. 또 주님은 불신과 무지, 그리고 미련한 그들에게 찾아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설명하실 때에 마음을 뜨겁게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영의 눈을 뜨게 하신 후 자리를 떠나게 하므로 그들의 인생 방향과 목적을 회복하신다고 한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지만 하나님이 영안을 열어 주셔야 하고 사명을 깨닫고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길 원하신다고 한다. 계시에는 특별계시와 일반계시가 있다. 일반계시는 창조에 근거되고 모든 지성적 피조물들에게 전해지고 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죄의 결과로 그들은 더 이상 그것을 올바르게 읽고 해석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일반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자와 섭리자로 나타내시는 행위이며 일반계시의 불충분성과 제한성에 한계가 있다. 일반계시는 하나님의 선과 지혜와 능력에 관한 다소의 지식을 전달하여 주지만, 그리스도가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못 한다. 일반계시로만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나로서는 계시가 무슨 말이고 구원은 뭘 의미하는 지 조차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은 한 학기동안 들은 내용으로 지레짐작하건데 구원은 죄를 씻어 새로운 삶을 살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특별계시는 재창조에 근거되고 죄인들에게 구속의 목적으로 전해지며, 단지 영적인 사람에 의해서만 적절하게 이해될수 있다고 한다. 자연 속에 나타난 일반계시와 함께 성경에서 구체화 되어 있는 특별계시를 받아들인다고 한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시고 친히 말씀하시고, 뜻을 밝히지 않으면 인간의 노력과 지식으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연을 통하여 인간의 두뇌로 천상의 비밀을 알 길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연의 진리를 재해석해주시고 구속의 새로운 계시를 제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 수 있다고 한다. 찾아오시는 방법은 다양하나 목적은 교제, 교통, 대화이다. 그리고 결과는 풍성한 생명, 행복한 삶이다. 특별계시를 통해 풍성한 생명과 행복한 삶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나님은 가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공개적으로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적이라고 있는데 성경에 나타난 이적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필연적인 방편이다. 구액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의 표현이며, 다가 올 하나님의 나라와 구속적 능력의 징조이다. 이적 중에 최대의 이적은 성육신 사건이라 한다. 성육신 사건은 복음서에서 그리스도의 이적과 표적의 목적은 요 20:31절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요. 또한 믿고 아들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신구약 성경의 모든 이적은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계시, 즉 나타냄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솔직히 이러한 내용은 내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나는 이적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표적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1학년 때 호기심을 가지고 목사님께 더 많이 배워놓을 껄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소결론이라는 것은 계시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이 주도적올 우리에게 찾아 오시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찾아오시는 그 하나님을 만나길 원하시며, 상호 관계가 이루어 지기를 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어두움에 거하는 죄인은 생명의 빛 의 접근과 근접을 싫어한다. 아담이 나무 그늘에 숨었고 성자가 오실 때엔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만큼 어두움에 속한 자들이 빛을 싫어하고 거부했다고 한다. 아담이 성자들을 죽이기까지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담은 순수하고 착한 에덴동산에 사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한번 죄를 짓고 두 번, 세 번 계속 죄를 지었다는 것이 의외였다. 나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만이 죄라고 생각했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찾아오심을 달갑지 않게 여겨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아 오셨다고 한다. 하나님은 관계를 맺을 뿐만이 아니라 유지하길 원하셨다. 계시에 따른 윤리에는 하나님께서 자연계시, 즉 자연만물과 그 현상들을 통해 자신의 영광과 뜻을 계시하시기에 하나님의 창조세계, 다시 말하면 자연과환경에 대한 기독교인의 자세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자연을 잘 보존하고 환경을 지킬 책임이 있다. 하나님은 예전부터 자연을 위해 자연을 보호하고 계셨다. 우리들은 자연의 몇 가지중 뭐 하나가 없어져야만 그 필요성을 알고 그 때부터 보호하려 하는 것 같다. 다른 교수님의 강의 중에 들은 얘기로는 미국은 1회용품의 천국이라고 한다. 솔직히 우리나라보다 미국에 기독교인이 많으면 많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정말 자연의 몇 가지중 하나가 없어져야만 그 필요성을 깨닫는 것같고 이 부분은 전 세계인이 종교를 떠나 함께노력해야하는 부분인것 같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특성은 한 마디로 ‘구원의 계시’이라는 점을 유의할 때 신구약 성경을 설교하거나 성경고부를 하거나 강의를 할 때 성경의 원초적인 목적과 방향을 떠나서는 안 될 것이다. 구속사적 성경해석과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가르치고 설교해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영웅담을 기록한 특별계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복음을 떠나고 십자가의 도리를 떠난 설교는 설교가 아니며, 성경공부가 아니라고 한다. 설교하거나 성경공부를 할 때 아브라함의 용기와 이삭의 순종이 주제가 아니며 특별게시는 구원의 계시라고 한다. 아브라함의 구원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을 통한 구원을 계시하는 사건이요 이적이었다고 한다. 이삭은 예수의 예표로, 모리아 산은 2100년 후에 골고다(해골)이 되고 제물로 정해지고 걸은 3일 죽은 목숨인데 이처럼 그리스도의 3일 동안 십자가에 죽으심을 예표, 이삭 대신 제물이 된 수양 역시 갈보리 위에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 등으로 설명을 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모든 성경 구절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계시의 정신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렇게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중 하나의 강의 주제를 선택하여 레포트를 써봤는데 의외로 3장을 채우기 힘들것 같았지만 배운 내용을 기반을 하고 내가 알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적으니 금방금방 쓴 것 같다. 그동안 강의 시간내내 딴 짓만하고 워크샾도 내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해서 올리고 강의도 몇 번 땡떙이 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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