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과천시의 특성
1. 과천시의 유래 및 연혁 과천시청 홈페이지
▶ 삼국시대
삼국시대엔 고을과 고을 사이의 땅 경계가 오늘날과 같이 뚜렷하지 않았다. 어느 고을(郡縣)이라고 하면 읍내(邑內)와 같은 마을을 중심으로 해서 진산(鎭山)의 산줄기를 따라 이루어지는 일정 지역이 대략 그 영역이 되는 것이 일반이었다.
따라서 동사힐 또는 율 목(栗木)으로 불렸던 고구려 시대의 과천(果川) 영역이 어디서 어디까지라고 정확히 짚어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신라 경덕왕 때(757) 율목군을 율진군(栗津郡)으로 고쳤다는 기록으로 보아 대략 율진군이었던 곳이 그 영역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될 뿐이다.
▶ 통일신라시대
고구려 땅이었던 과천은 신라가 문무왕 이후 한반도를 지배하게 됨에 따라 그 관할 안에 들어가게 됐다. 『삼국사기』 권 35에 보면 율진군(栗津郡)은 본래 고구려의 율목군(栗木郡)을 경덕왕이 개명한 것인데 (『삼국사기』가 간행된 고려시대에는) 과주(果州)라 부른다 고 기록되어 있고, 거기에 속한 영현이 곡양현(穀壤縣), 공암현(孔巖縣), 소성현(邵城縣) 등 셋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당시의 과천(果川:栗津郡)은 상당히 큰 영역이었다고 할 수가 있다. 곡양(穀壤)은 현 서울특별시 구역중 구로구의 가리봉동, 구로동, 독산동, 시 흥동, 신도림동과 관악구의 봉천동, 신림동, 동작구의 상도동, 대방동, 신대방동, 영등포구의 당산동, 대림동 도림동, 문래동, 신길동, 양평동, 양화동, 그리고 경기도의 광명시(옥길동 제외)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되어 이것만으로도 무척 넓은 지역이다. 공암(孔巖)은 지금 의 서울 강서, 양천구 일원이며, 소성(邵城)은 인천시와 부천시 일부및 시흥시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당시 율진군(栗津郡)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군으로는 남쪽으로 수성군(水城郡:지금의 수원시), 당은군(唐恩郡:지금의 화성군)이 있었고, 북쪽으로 한양군(漢陽郡: 지금의 서울, 광주, 양주, 고양)이 있었다. 또 동쪽으로는 소천군(?j川郡:지금의 광주, 여주)이 있었고, 서쪽으로는 안산군(安山郡:지금의 안산시, 시흥시 일부)과 장제군(長堤郡:지금의 부평, 김포)이 있었다. 이러한 지역 분포로써 당시 율진군(栗津郡)의 영역도를 그려 보 게 된다면, 북쪽은 한강, 남쪽은 수원과의 경계, 동쪽은 광주와의 경계, 서쪽은 안산까지 이르게 되는 넓은 지역이 된다.
▶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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