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화] 홍콩회귀의 시기 전후의 영화를 통해 본 대륙과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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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영화] 홍콩회귀의 시기 전후의 영화를 통해 본 대륙과 홍콩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 론
1) 『첨밀밀』 서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홍콩
2) 『중경삼림』 혼성과 불안의 공간
3) 시소의 반대편에 앉아있는 대륙과 홍콩

3. 마치면서
본문내용
1. 서 론

오늘날의 국제사회는 경제적인 실리를 위하여 국가간의 협력관계가 형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실리보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정되던 냉전의 시기가 있었다. 1992년 8월 24일 이전의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대만’, ‘홍콩’ 사이의 관계도 그러했다. 새로운 국제 관계의 시스템이 운용되기 이전에는 자본주의를 국가의 주도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삼은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들이 과거 동아시아 문화권의 대표자 격이었던 ‘중국’이나 ‘중국의 변화’를 대륙에서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통로가 양국 정부에 의해 사상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엄격히 차단되어 있었다.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몇 천년 전의 역사서의 서술을 현대까지 끌어와 ‘중화인민공화국’과 동일시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국제관계의 경험에서 야기된 것이다. 근대 이후 대한민국에게 있어서의 ‘중국’은 대륙보다는 홍콩과 대만에서 오는 이미지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변화의 시국에 홍콩을 이해해보고 대륙과 홍콩의 관계사적 측면을 조망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1) 『첨밀밀』 서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홍콩

『첨밀밀』에서 우리는 자전거를 대륙에서는 차라 부르고, 홍콩에서는 단차라고 부르는 언어의 차이를 발견할 수가 있다. 이는 단순히 방언의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중국의 북방지역과 남방지역에서 米란 단어가 상징하는 사물이 밀과 쌀로 각기 다른 것처럼 언어는 친숙한 사물이 무엇인가에 따라 조금 덜 익숙한 사물을 별도로 칭하는 말을 만들어낸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차와 단차의 간격은 곧 대륙과 홍콩 사이의 경제적인 거리가 아닐까 싶다. 1984년 홍콩의 1인당 GNP는 미화 6,300달러 로 대륙의 20배 정도였다. 사상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홍콩의 경제적인 매력은 많은 대륙 사람들을 유인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구정 전날 등려군 음반을 파는 작은 노점을 열은 이교가 매년 소군과 같은 대륙으로부터의 이민자가 10만은 되기 때문에 장사가 잘 될 것이라고 말했듯이 1980년대 이후만을 기준으로도 홍콩으로 넘어온 新移民 인구는 매년 10만 여명이었으며, 총 100만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이 시기의 홍콩에는 많은 대륙인들이 유입되었고, 식민지 정부와 함께 정치·경제적으로 넘어와 정착한 영국인들
참고문헌
후지이 쇼조/ 『현대중국문화탐험』/ 소화 / 2002.5.15
임계순 / 『중국의 여의주 홍콩』/ 한국경제신문사 /1997.6.15
동양학연구학회 / 『홍콩은 어디로 가는가』 / 우석 / 1997.6. 10
이안 부르마 / 『누구의 중국성인가』 / 정문길 등 / 2004
후지이 쇼죠 / 「홍콩, 1백년만의 귀환」『현대중국, 영화로 가다』/ 지호/ 2001
/甛密密短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