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치료와 철학자 니체1

 1  상담치료와 철학자 니체1-1
 2  상담치료와 철학자 니체1-2
 3  상담치료와 철학자 니체1-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상담치료와 철학자 니체1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0.15.~1900.8.25.)는 19세기 독일 철학자이며 음악가이자 시인이다. 예전의 프로이센 (독일)의 작센 지방의 소읍인 뢰켄(Rocken)에서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움부르크에 돔 김나지움에 다니면서 음악과 언어의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였다. 그 후 국제적으로 유명한 슐포르타에 입학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에 대해서 중요한 입문 과정을 이수할 수 있었다. 그 동안에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조그만 시골 마을의 기독교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가족의 삶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었다. 1864년 졸업을 한 후에 니체는 신학과 고대 철학을 본 대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는 어머니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신학공부를 중단하였고 그것은 아마도 그가 1835~1836년에 다비드 슈트라우스가 쓴 《예수의 생애》(Das Leben Jesu)란 책에서 그가 담당한 부분을 읽어나가던 중에, 그 책의 내용이 젊은 니체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 후 니체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리츨 교수 밑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데 집중하였고, 이듬해에 그는 리츨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겼다. 1865년에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글들을 알게 되었고, 그는 1866년 프리드리히 알베르트 랑게의 책, 《유물론의 역사와 그 현재적 의미에 대한 비판》을 읽었다. 그들의 저서는 니체가 그의 지평을, 철학을 넘어서는 영역까지 확장하도록 격려했으며, 그의 학업을 지속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24살에 스위스 바젤대학교 교수가 되어 프로이센의 국적을 포기했고,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매독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바그너와 함께 음악에 대해서도 많은 교류를 하였지만 사상의 차이로 인해 결국 결별하고 만다. 1878년 니체는 그 특유의 경구가 가득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출판하였다. 또한 니체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철학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즈음에 혼인을 하려 애쓰기도 했다. 1879년, 건강이 더욱 악화되면서 니체는 바젤 대학교의 교수직을 사임했다. 사실 그는 어릴 적부터 병치레가 잦았는데, 가끔 두통이나 복통을 겪기도 했다. 1868년에 낙마사고와, 1870년에 걸린 병 때문에 니체의 건강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보이며, 실제 바젤 대학교에서 휴가를 많이 갖기도 했다. 1879년 이후 건강상의 악화와 자유로운 철학의 정립을 위해 35세에 바젤 대학교에서 퇴직한 이후 그는 강연도 그만두고, 병든 몸이 적응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집필생활에 몰두하였다. 1889년 1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졸도한 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보냈다.
2. 니체의 주요사상
①생에 대한 긍정(허무주의) : 니체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목표는 허무주의의 자기극복이었다. 사회는 나날이 안정적으로 변하고 문명은 더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권태로워진다. 점점 더 쾌락을 원하고 문화는 타락해간다. 이런 사회적인 상황이 허무주의적인 삶, 니힐리즘을 불러온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니체가 말하는 허무주의란 염세주의의 허무주의가 아니라 현실의 세계 자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현실 너머의 초월적인 세계, 초월적 본질(신, 이데아 등)을 찾는 것으로 현실에서의 삶을 긍정적으로 나아가려고 하였다.
‘진리란 무엇인가?’를 질문한 것이 아니라 ‘진리란 어떤 것인가?’를 질문한 니체였다. 다시 말해 진리를 사로잡고 있는 의지의 힘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동안 인식의 대상이 아니었던 힘을 니체는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원인으로 바라보았고 그것이 삶을 충만하게 살도록 이끄는 것으로 보았다.
영원회귀 :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온다. 그렇게 존재의 바퀴는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것은 죽고 모든 것은 또 다시 태어난다. 존재의 세월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다.” - 니체
결정론으로서 영원회귀가 아니라 이를 자각함으로서 똑같은 생이 무한하게 반복된다고 해도 그것을 자신의 의지가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운명애(運命愛)로서 생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초인 : 니체는 신의 이념(도덕)이 인간 실존을 규명하고 의무를 부과한다고 여겼고 이 신의 이념이 떨어져 나간 후에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신의 죽음으로 인한 인간 존재의 변화를 자기 소외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알게 되고 능력을 발현하는 창조적 자유에로의 변화로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을 ‘초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초인이 되기 위해 겪는 3가지 과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였다.
①정신의 단계 : 낙타 -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건너는 단계
- 신의 뜻에 따라 숙명으로 정해진 삶의 의미에 복종하는 수동적 단계
실존적 단계 : 사자 -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며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단계
- 그러나 지혜가 부족하고 온전하지 못한 단계
어린아이의 단계 : 해방된 정신의 단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단계로서 초인의 전형.
3. 적용 가능한 문제 및 한계점
수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 삶에 의욕이 없는 내담자들, 고통스러운 상황에 낙담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니체는 고통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는데, 고통 그 자체가 즐거움의 원천이며 즐거움이 고통에 의존한다고 본 것처럼 내담자가 자기 자신의 내적인 고통을 극복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쾌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내담자의 고통, 고충은 당사자가 직접 당면했을 때 얼마나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고려해보면 결코 쉽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