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인의 생활과 문화

 1  호주인의 생활과 문화-1
 2  호주인의 생활과 문화-2
 3  호주인의 생활과 문화-3
 4  호주인의 생활과 문화-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호주인의 생활과 문화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코펜하겐 왕립예술학교에서 역사가이자, 도시계획가인 S.E.라스무센(Steen Eiler Rasmussen)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고, 1945년 같은 北구라파의 건축가 군너 아스프룬트(E.G.Asprunf)와 알바 알토(Alvar Aalto)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교류했다. 1948년 파리에서 페르난드 레거와 르 코르뷔제를 만나 실무를 경험한 뒤, 유럽각지와 小아시아를 여행하여 모로코의 촌락과 풍경과의 융합에 관심을 가졌다, 은 당시 받았던 영향이 보인다. 이듬해 1949년 미국과 멕시코 여행 때, 의 기단(基檀)부 디자인의 원형이 된 멕시코 마야 유적의 기단에 매료됐다고 한다.
1966년 현상설계 당선으로부터 10년 공사착수로부터 3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초과한 예산과 공사기간 연장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에 의해 웃존은 이 공사로부터 완전히 손을 떼야 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 사실 1954년 뉴사우스웨일즈 정부의 주도로 이 프로젝트가 발주될 당시는 국가를 대표할만한 건축물을 만들어내자는 원대한 의지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예산과 시간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자 훌륭한 작품이다고 뽑아 놓은 웃존을 해고(?)하는 헤프닝이 연출된 것이었다. 그러나 15년의 세월에 걸쳐서 1972년에 완성된 는 틀림없이 웃존의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금세기를 대표하는 건축이 되었다.
에 대한 몇 가지의 이야기들.
는 현상설계 당시와 이후 완공까지 숱한 화제와 갈등,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건축학도들에게는 이미 신(?)의 경지에 올라 있는 르 꼬르뷔제를 비롯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알바 알토, 미스 반 데 로에, 필립 존슨 등 쟁쟁한 유명건축가들을 제치고, 무명의 요른 웃존의 설계안이 채택된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이슈였다.
의 역사
1954년
뉴사우스웨일즈 정부의 주도로, 국가를 대표할만한 건축물을 만들자 원대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전세계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국제현상설계가 공모된다.
1957년
이 현상설계에 참가한 총 222 작품 중 대상에서 탈락된 계획안들을 다시 살펴보던 심사위원 중 하나인 에로 샤린넨(Eero Saarinnen)은 웃존안을 재심사할 것을 요구했고, 재심사에서 웃존안이 최종 당선안으로 발표된다.
1959년
첫 번째 스테이지의 기초공사를 시작했고, 오리지널 디자인 중 Roof Line Shell이 구조적으로 시공이 불가능하여 재설계에 돌입한다.
196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