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인의 생활과 문화
1966년 현상설계 당선으로부터 10년 공사착수로부터 3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초과한 예산과 공사기간 연장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에 의해 웃존은 이 공사로부터 완전히 손을 떼야 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 사실 1954년 뉴사우스웨일즈 정부의 주도로 이 프로젝트가 발주될 당시는 국가를 대표할만한 건축물을 만들어내자는 원대한 의지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예산과 시간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자 훌륭한 작품이다고 뽑아 놓은 웃존을 해고(?)하는 헤프닝이 연출된 것이었다. 그러나 15년의 세월에 걸쳐서 1972년에 완성된 는 틀림없이 웃존의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금세기를 대표하는 건축이 되었다.
에 대한 몇 가지의 이야기들.
는 현상설계 당시와 이후 완공까지 숱한 화제와 갈등,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건축학도들에게는 이미 신(?)의 경지에 올라 있는 르 꼬르뷔제를 비롯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알바 알토, 미스 반 데 로에, 필립 존슨 등 쟁쟁한 유명건축가들을 제치고, 무명의 요른 웃존의 설계안이 채택된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이슈였다.
의 역사
1954년
뉴사우스웨일즈 정부의 주도로, 국가를 대표할만한 건축물을 만들자 원대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전세계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국제현상설계가 공모된다.
1957년
이 현상설계에 참가한 총 222 작품 중 대상에서 탈락된 계획안들을 다시 살펴보던 심사위원 중 하나인 에로 샤린넨(Eero Saarinnen)은 웃존안을 재심사할 것을 요구했고, 재심사에서 웃존안이 최종 당선안으로 발표된다.
1959년
첫 번째 스테이지의 기초공사를 시작했고, 오리지널 디자인 중 Roof Line Shell이 구조적으로 시공이 불가능하여 재설계에 돌입한다.
1961년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