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이 갖는 민족의 정신과 얼
즉, 고대 그리스의 벽화에도 씨름하는 그림이 있고, 석가는 왕자 때 그 사촌인 제바달다(提婆達多)와 씨름겨루기를 했다는 기록이 불전에 나와 있다. 《예기(禮記)》 이나 장평자(張平子)의 《서경부(西京賦)》를 보면 중국에서도 한무제(漢武帝) 때에 씨름이 가장 성행하였고, 진(秦)나라 때에는 각저(角)라고 불렀다는 것이 고서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한국의 씨름은 아득한 상고시대부터 행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태조 주몽이 왕위에 오르기 전 계루부(桂婁部) 족장 때 5부족장(五部族長)의 고추가(부족장의 존칭)시합이 있었는데, 이 시합종목이 각저 ·궁사(弓射) ·승마 ·수박(手搏)이었다고 한다. 특히 중국의 문헌에는 우리의 씨름은 고려기(高麗技) 또는 요교()라고 했을 정도로 중국의 각저희(角溟戱)나 일본의 스모[相撲]와는 그 방식이 다르고 독특하였다.
2. 스포츠로서의 근대화
씨름이 현대적인 스포츠로서 대두하게 된 것은 1927년경의 일로, 강낙원(姜樂遠) ·서상천(徐相天) ·한진희(韓軫熙) ·강진구(姜瑨求) 등이 한국 씨름의 실태조사와 함께 조선씨름협회를 창설하면서부터이다.
당시의 대표적인 대회는, 중앙기독교청년회가 주최하는 전조선씨름대회와 조선체육회 및 조선씨름협회가 공동주최하는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 등이었고, 조선체육회가 주최하는 전조선종합경기대회에는 16회부터 씨름종목이 들어서 활기를 띠게 되었으나, 18회를 끝으로 1938년 7월 일제에 의해 조선체육회가 해체되면서 종합대회는 중단되었는데, 이 대회에서 오늘과 같은 샅바를 매고 하는 씨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대한씨름협회가 창설되었고, 초대 회장은 서상천이었다.
그 후 전국체전의 씨름종목을 비롯하여 전국씨름선수권대회 ·전국종별씨름선수권대회 ·대통령기 쟁탈 전국장사씨름대회 ·전국장사씨름대회가 열리고 있으나, 전통문화와 민속체육의 의의를 지닌 우리의 씨름이 근대 스포츠의 그늘에 가리어 활발성을 잃고 침체상태에 있던 것도 사실이다.
이와 같은 슬럼프에서 벗어나 씨름경기인구의 저변확대, 국민체위 향상을 도모한다는 새로운 기치 아래 1983년에 이르러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씨름으로 구분 육성하기로 한 이후 현재는 두 협회의 주관으로 씨름경기를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1) 샅바 매는 법
샅바는 대한씨름협회 경기규칙에 의한 경기용구의 규정에 의해 광목 전단너비로 하되 길이는 3.20 m 이내로 한다. 먼저 오른쪽 허벅다리에 맞도록 신축성 있게 매고, 샅바를 앞으로부터 허리 뒤로 한 바퀴 휘둘러 오른쪽 다리에 매어 있는 샅바 사이로 끼워 풀어지지 않게 허리에 두른 샅바에 동여맨다. 물론 이 때의 신체 부착물은 씨름팬츠와 샅바뿐이다.
2) 기본자세
씨름경기는 대인경기이다. 먼저 마주한 두 사람이 서로 오른쪽 어깨를 맞대어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왼쪽 옆구리의 허리샅바를 잡고, 왼손으로는 상대방의 오른쪽 허벅다리에 두른 샅바를 서로 똑같이 잡는다. 이 때 오른손은 상대방 옆구리 측면의 중심선을 넘겨 잡지 못하도록 되어 있고, 다리 샅바를 잡은 손은 다리 측면 대퇴골 중심선을 넘겨 잡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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