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언어학 자료제공
1. 종교 유물에 나타난 언어와 종교(학)
17세기에 일어난 유명한 사실의 하나로 중국 경교 경교 [景敎, Nestorianism] : 에베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선고된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네스토리우스가 주창한 그리스도교 일파의 중국 명칭.
비는 세계는 세계 종교사 위에 큰 공적을 끼쳤다. 포르투갈사람 알바레즈 세메도(Albarez Semedo)는 섬서성(陝西省) 서안부(西 安府)에 가서 그 비석을 검열하고 거기에 써 있던 한문을 읽었었다. 당시 세메도는 거기 있는 외국 문자는 어느 나라 글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3년 후에 그 비문 찍은 것을 가지고 베트남으로 갔고 선교사 페르난데스(Antohonio Fernandez)를 만나 그 비문에 있는 외국 문자는 시리아어인 것을 알게 되었다. 세메도가 이 경교를 포르투갈어로 다시 번역하였다. 이어서 이탈리아어 번역이 나오고, 1678년에 가서는 비문의 라틴 번역문을 출판하였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경교비에 대한 한 사람의 호기심과 연구에 의해 경교가 번역되고 세계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언어학은 특정 종교에 있어서 큰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교의 개조는 그리스도교 교사 중의 시리아 사람으로 콘스탄티노플 감독까지 되었던 네스토리우스(Nestorius, 428년에 감독이 됨)이다. 이 사람은 431년 에베소에 모인 제3회 종교대회에서 이단자라는 선고를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로마제국 내에서 전도할 수 없게 되었고,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그리하여 로마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경교비같은 것들이 발굴되는 것이다.
중국은 도교가 그 교조 노자의 성이 이씨이므로 당대의 황제의 성이 노자와 같다 하여 도교를 국교로 선포했었다. 유교는 같이 중국에서 일어난 종교라 하여 관용하였으나 불교와 네스토리우스교는 다 외국 종교의 수입된 것이라 하여 박해를 더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입 종교의 박해에 의해 경교비는 세운지 65년 만에 그림자를 감추게 되었지만, 상한 자리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신자들의 손으로 땅 속에 파묻었던 듯하다.
직접 종교에 관한 일은 아니지만 간접으로 영향이 있는 로셋타 석비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 석비는 나폴레옹의 애굽 원정당시(1798-1801) 발굴되어 프랑스로 옮겨졌다. 이 돌은 현재 영국 런던 박물관에 있다. 세 층으로 글자를 새겨져 있는데, 맨 위에는 애굽 고대에 쓰던 상형 문자, 가운데는 당시에 사용하는 애굽 문자, 아래는 헬라 글자이다. 그 내용은 같은 사연을 세 가지 글로 기록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샬포욘(J.F.Champollion, 1790-1832)과 영국 외교관 토마스 영(Thomas Young, 1773-1829)이 이것을 연구하였다. 헬라글자의 해석과, 그 것을 단서로 애굽 중세의 말과 고대의 상형문자까지 알게 되었다. 이렇게 애굽 고대문자와 중세문자를 알아보고 읽을 수 있게 되고 보니, 피라미드에서 파낸 파피루스를 자유자재로 읽을 수가 있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애굽학이란 새 학문이 일어나고 옛날 역사와 사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한 종교에 있어서 언어의 연구는 하나의 새 학문이 일어날 정도로(여기에서는 애굽학을 말한다) 의미가 크다. 간과할 수도 있는 문제들을 통찰력 있고 호전적으로 바라볼 때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땅 속에나 혹은 물속에 감추어져 있던 옛날 유물들이 눈앞에 나타나기는 하였지만 읽을 사람이 없다면 그저 옛 골동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옛날 문헌을 읽을 수 있게 만드는 학자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근년에 와서 민족학과 언어학과 문헌학이 발달함으로 말미암아 종교의 발생된 지방과 전파되었던 지역이든지, 신봉되었던 경전과 숭배를 받던 신들이든지 점차로 잘 알게 되어 그 종교가 어떤 종류의 종교였는지도 분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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