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뢸치의 역사 속의 종교 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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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트뢸치의 역사 속의 종교 논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우선 트뢸치의 역사방법론에 대해 간명하게 정리해 주셔서 그 종합적 이해를 도와주신 발제조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트뢸치를 통해 여전히 함께 고민할 문제들이 몇 가지 떠올라 논찬조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 및 제언을 하고자 합니다.
1. 트뢸치는 역사주의를 선택함으로써 기독교의 확실(절대)성을 포기했는가?
트뢸치는 ‘역사주의(역사적 상대주의)’에 매료되어 그 때문에 고통 받기도 했다. 즉 그는, 무엇이든 어느 시간이나 장소에서 평가, 추구, 인식, 성취되는 것은 모두가 그 시간이나 장소의 상황들과 관계되며 그 배경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역사주의의 견해를 일관성 있게 적용하면 현대의 입장에서 과거시대들을 이해하기란 전혀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다양하면서도 역사에 따라 변하는 교회의 교리는 각 세대가 새로이 해석하는 계시된 진리의 절대적인 양상과 일치시켜야 한다고 본 것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2권, 649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뢸치는 기독교의 절대적 확실성을 비판한 학자로 평가되기도 했다.틸리히(P. Tillich, 1886-1965)도 트뢸치의 《칸트 연구 Kant-Studien》(1924)가 종교의 순수한 상대성을 주장하기 위해 절대성을 희생시켰다고 비판한 바 있다. 드레서(H. G. Drescher)도 “트뢸치는 꾸준하게 종교의 역사 안에서 기독교를 제한하는 사고를 찾는 것이 불가피한 것임을 발견했다. 여기에서 그는 기독교의 절대성에 대한 의문에 다다른 것이다.” H. G. Drescher, "Troeltschs intellectual development", in Ernst Troeltsch and the future of Theology(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6) 4.
라고 함으로써 트뢸치가 그의 스승 리츨과는 달리 기독교의 우월성을 고집하는 강박으로부터 탈피되었다고 보았다. 여기서 틸리히나 드레서의 비판은 어느 정도 타당한 것인가? 과연 트뢸치가 지녔던 기독교에 대한 입장은 일반적 의미로서 상대적이라 할 수 있는가?
2. 중세 도그마와 근대 이성의 접목 가능성에 주목한 것은 개신교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 아니었을까?
트뢸치는 리츨의 사상에 깊이 경도됨으로써, 지금까지 서구(유럽)의 교회가 고집해온 소위 절대진리(≒Dogma)에 대한 신념을 재고해야 한다고 충고하면서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동시에 근대적 역사방법론에 입각하여 그 접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 “나는 일찍이 열정적이고 뛰어난 학자인 리츨의 감명적인 가르침에서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는 전통적 도그마의 특수한 개념으로 근대적인 필요성과 문제점이 그것을 통해 도출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근대의 지성과 종교의 상황개념으로 그 것을 통해 전통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이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E. T,roeltsch, The Social Teaching of the Christian Churches, New York, Haper & Brothers, 1960, 19.)
그는 1906년 “개신교주의 기독교와 현대의 교회"(Protestantische Chritientum und Kirche in der Neuzeit)에서 개신교주의의 발전과 그 문화 생활과의 관계성에 대해 분석적으로 연구한 바 있다. 또한 ”근대 세계의 발흥에 있어서 개신교주의의 의미“(Die bedeutung des Protestantismus fur die Entstehung der modernen Welt)에서도 개신교주의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논의를 진작시켰다. 이 논문에서 그는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이 기독교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결국 그가 리츨의 모델을 토대로 향후 실질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것은 중세와의 접목 시도를 통해 개신교(특히 그 자신이 속해 있던 독일 루터교로 대변되는)의 정당성을 근대성 안에서 확보하고자 했던 것 아닐까? 그는 기독교의 본질 그 자체에 천착한 것인가 아니면 개신교에 대한 정당성에 더욱 무게를 뒀던 것일까?
3. 트뢸치의 역사방법론이 지닌 실증적 한계는 ?
트뢸치의 사상, 특히 역사철학에 있어서 그는 추상적인 관념에 천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언제나 역사적인 구체적 사실에 관심하며 방대한 자료에 근거하여 성과물들을 냈다. 그의 저서들을 보면 상투적인 용어들을 기피하며 가족, 길드, 국가, 교회, 소종파 같은 소규모 사회단위들이나 집단들에 대한 연구에 주목했다.
그의 대표적 저작인 “신학의 역사적 방법과 교조적 방법에 대하여(Uber historische und dogmatische Methode in der Theologie)에서 그는 역사적 방법과 교조적 방법의 대조적 관계를 파악하면서 기독교가 일반 역사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견해는 기독교의 타종교에 대한 분리주의적 태도에 대한 일종의 비판이었다.
트뢸치는 단순한 역사상대주의는 경계하면서도 비겁한 방식의 기독교 절대화 작업 또한 반대한 것으로 보인다. 즉 정공법으로서의 역사방법론을 시도해 기독교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거창한 시도를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