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가족제도 공동체 문화 복원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전 세계사 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원시 시대 모계중심의 사회에서 부계중심의 사회로의 전환은 보편적인 현상이었고, 부계사회에서는 당연히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존재로 대접받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남성이 여성보다 남성의 생산효율이 높을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생산방식으로 인해 한 가족에 있어 장년의 남성이 가장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밖에 없었기에 가부장 사회는 엄밀히 말해서 유교 문화권만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면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유교의 가족제도가 비판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제도 자체의 문제일까?
2. 서양과 유교문화권의 가족제도
유독 유교문화권에서 가부장 사회에 대한 논란이 이는 것은 서구가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인 것과는 달리 유교문화권에서는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즉, 개인보다는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강조되는 사회다보니 가부장적 폐해가 더 크게 부각되는 것이다. 아마 서구에서 개인이 아닌 가족 공동체 중심의 사회가 꾸려졌다면 유교가 아니더라도 기독교가 가부장적 사회를 만드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서구는 정복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과 노예 획득으로 생산력을 늘렸다. 때문에 서구사회는 노예제 사회를 기반으로 지탱이 되었다. 노예에게는 기본적으로 가족이라는 개념이 희박할 수 밖에 없다. 노예는 대개 전대로부터 노예라는 신분을 대물림 받을 수 밖에 없었으므로 노예제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긴밀한 유대감을 갖기란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서구사회에서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내부에서의 규범과 윤리의식을 강조하기 보다는 노예와 영주 간의 수직적 관계를 규정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유교문화권에서도 물론 수직적 신분질서는 존재했고, 수직적 관계를 규정하는 작업은 진행되었었다. 하지만 유교문화권의 수직적 신분질서가 서구사회와 가지는 차이점은 서구사회는 영주와 노예의 주종관계가 중심인 반면, 유교문화권은 양반이라는 사회지도층이 일반 민중을 이끄는 관계이기 때문에 수직적 신분질서라는 개념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유교문화권은 서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유교문화권은 기본적인 산업구조가 농경위주였고, 토지는 공동재의 성격이 강했다. 농사만으로도 충분히 잉여가치가 발생할 수 있었기에 잦은 이주보다는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자연스럽게 혈연을 중심으로 한 촌락이 형성되었다. 농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개인의 노동보다는 가족단위의 노동이 시작되었고, 혈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촌락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중심의 공동체가 강조되었다.
때문에 유교문화권에서는 개인이라는 존재의 문제보다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유교의 기본 도덕사상이라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살펴보더라도 이런 경향은 쉽게 알 수 있다.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의 삼강(三綱)과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륜(五倫) 모두 서로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내용들이다.
그러므로 최소 단위의 공동체 단위인 가족에서부터 질서를 갖추어 나가는 것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유교문화권에서는 가족제도가 서구보다 더 강력하게 영향을 미쳤기에 가부장제의 폐해가 더 부각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공동체 문화의 붕괴
이러한 가족 중심의 공동체 사회였던 우리나라에 서구문화(개인주의, 자본주의 등)가 들어오게 되면서 우리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문화의 해체와 개인주의의 확산이 우리 사회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공동체 문화의 해체는 타인과의 조화로운 삶을 강조하는 유교의 가치관이 붕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는 가족 간의 유대감을 기반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해 온 측면이 강했지만 이제는 그런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 질서를 지탱해 온 가족윤리의 붕괴로 인해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사설] 패륜범죄는 사회 병리현상이다
경향신문 2006년 0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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