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자를 위험해’ , ‘병원에 가둬놔야 해’, ‘정신병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걸리는 거야’ 등의 편견은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았으리라 생각 합니다. 하지만 정신장애인이 어떠한 고통 속에 살아가는지 왜 정신질환이 생겨나고 해마다 증가를 하는지 정신자애인의 내면들 들여다보고자 하는 시도는 몇몇 소수의 사람들 이외에 거의 전무 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본문에서 정신장애인의 인권에 관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소개
정신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앞서서 저를 짤막하게 소개 하고자 합니다. 저는 많이 살아 보지는 않았지만 저의 23살이라는 숫자가 그렇게 짤막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짧은 인생 동안에 많은 저에겐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의 내 또래와는 조금은 힘들게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주 힘들게 산 것은 아니 였지만, 저는 농사꾼의 딸 이었습니다. 막내딸이지만 우리 집은 농사를 아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일을 할 때 막내라고 예외는 없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과외를 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스피드로 학업을 해내는 동안에 나는 학교는 다녔지만 4계절 내내 힘들 일들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넉넉하지 못하고 풍족치 못한 우리 집 이었지만 그래도 매우 행복했습니다. 가끔 약주를 걸죽 하게 드시고 밤이 되는 아버지를 맞이하는 것도 그 당시에는 매우 행복했고 그때가 그립기도 한 훈훈한 그런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12살 될 때쯤에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어 버렸습니다. 목슴은 살았지만 뇌 손상으로 인해 강직하고 강하고 포근했던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어린아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목욕을 시키고 얼굴을 닦아주고 어떤 말을 하면 신경질 적으로 반응 하는 아버지가 매우 미웠습니다.
이런 성장기를 거치면서 나의 청소년기는 매우 힘들었지만, 힘든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가족 몰래 술과 담배를 서슴없이 하고 공부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암으로 떠날 때는 모든 것이 허무해 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만나 그런 방황기를 끝낼 수가 있었습니다. 확실한 삶의 목적을 나에게 주셨기 때문이라 생각 합니다.
대학을 4년째 다니고 있는 저는 이런 이유들에서 인지 정신영역에 대한 많은 의문을 가지면 대학을 다니고 사회복지실습을 할 땐 정신 보건 센터에서 실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전부를 이해하고 정신질환에 대해 많은 학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어릴적 아버지의 질환을 이해하고 싶어 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삶은 고민해보고 어떻게 하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고민하기 시작 했습니다. 마태복은 20장 45절에 나온 말처럼 작은자의 친구가 되어 주고 그들의 도움이 된다면 곧 그것이 나에게 원하시는 삶인 것 같습니다.
이렇듯 나는 지금도 많은 고민가운데 정신질환에 대해 알고 싶고 그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그들의 옆에 있어 주고 싶은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정신질환 어떻게 볼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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