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여성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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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공한 여성 CEO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새뮤얼 팔미사노를 이어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IBM의 CEO를 맡았으며, 10월 1일부터는 회장직을 겸하게 된다. 7년 연속 포춘지가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여성 50인에 선정되었으며, 2011년 순위는 7위이다.
메리 바라(Marry Barra)
GM(최고경영자(CEO)
포브스가 14년 5월 28일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중 사업가 부문 1위를 차지함으로써 전세계 영향력 있는 여성 사업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제너럴 모터스 CEO는 GM에 1980년부터 인턴으로 근무를 시작해 내부 승진을 통해 CEO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메리 바라는 회사 부설 자동차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이후 잭 스미스 전 GM 최고경영자의 비서로 발탁된 후 스탠퍼드경영대학원에 다니게 됩니다. 재무전문가가 아닌 기술 전문가 출신으로 GM 뿐만 아니라 미국 자동차 업체 최초의 여성 CEO인 메리 바라는 미국 제조업의 꽃이라 불리는 자동차 산업의 여성 CEO라는 점에서 미국 전체를 넘어 전 세계에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드라 누이(Indra Nooyi | Indra Krishnamurthy Nooyi)
펩시코 (회장, 최고경영자(CEO))
인도계 미국인 기업인으로, 펩시코의 최고경영자 및 회장이다. 포보스에서 2012년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에서 12위를 차지하였다. 2001년 5월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이 해를 결코 잊지 못한다. 시가총액이 경쟁사인 코카콜라를 제치고 업계 1위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펩시가 ‘만년 2등’이라는 설움을 떨쳐버리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누이는 2006년 CEO의 자리를 꿰차고 이듬해 5월에는 이사회 회장직에 올랐다. 그녀 나이 51살 때였다. 펩시코 41년 역사에서 첫 여성 회장이었다. 그녀는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천이 선정하는 미국의 500대 기업에서 CEO와 회장직을 겸하는 다섯 번째 여성 경영인이 됐다. 그녀는 펩시코 CEO로서 총 1700만 달러의 보수를 받아 경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상복도 따랐다. 2006년부터 해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경제주간지 ‘포브스’ 등이 뽑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2011년에는 마이애미대학에서 명예법학 박사학위를 받는 등 다수의 명예학위도 받았다.
정선희
설빙(최고경영자(CEO))
부드러운우유얼음위에고소한콩가루를토핑한‘인절미설빙’은수많은아류작을양산할정도로큰화제가됐고,설빙은론칭1년여만에전국420개의가맹점을거느린메가프랜차이즈가됐다. 론칭1년반만에420개의가맹점을거느린설빙을두고,일부사람들은우연히얻은성공이라폄하하기도한다.하지만그간정선희대표의노력을아는사람들은설빙의성공이결코우연이아니라는사실을잘알고있다.
“하루아침에이룬성공이아니에요.수년간손님들의반응을확인하고수많은시행착오를겪으며개발한메뉴들이죠.”
한성주
MCM(최고경영자(CEO))
김성주 사장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은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는 가진 자의 의무라는 뜻의 Noblesse Oblige를 평생 신조로 삼고 있다. 그녀는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실천하는 Noblesse Oblige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그가 말하는 가진 자란 단지 권력과 돈과 지위를 가진 이들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 남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졌다면, 남보다 더 창조적인 머리를 가졌다면, 더 건강한 육체를 가졌다면 그들은 모두 가진 자들이며 최선을 다해 자신이 가진 것을 사회에 돌릴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재벌가의 막내딸로 태어나 가난을 모르고 자랐다. 다 자신처럼 부유하게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 병든 아버지와 산동네 판잣집에 사는 한 친구의 집을 방문하면서 이 편견에서 깨어났으며, 그때 잘사는 사람은 못사는 사람을 도와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때 깨달은 Noblesse Oblige를 평생 신조로 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외국에서 생활하면서도 선진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힘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직접 확인한 것이다. 김성주 사장이 미국 백화점 블루밍데일스에서 일했을 때 일이다. 김성주 사장이 백화점 회장실이 너무 초라하고 몇 평 남짓한 건물 구석에 있는 것이 아무래도 이해가 안가 물었을 때 마빈회장은 내 공간을 고급스럽게 치장할 돈으로 손님들이 쓸 공간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고쳐 놓는게 옳다고 그것이 바로 의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여기서 진정한 권위는 특권층의 타이틀이 아니라 바로 성실하게 의무를 수행할 때 바로 선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그는 지난 해에 펴낸 책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왕따이고 싶다에 대한 판매 수입으로 유진 벨 재단을 통해 북한 어린이 돕기도 하는 등 많은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