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가 난작 중 인물의 심리분석
ⅰ. ‘가난’에 대한 심리적 양상
‘나’와 ‘상훈’이 겪는 갈등은 폐병에 걸린, ‘상훈’의 동료 ‘만식’을 돕기 위해 ‘나’가 건네준 예금통장의 돈을 ‘상훈’이 모두 그에게 가져다주면서 절정을 이룬다. ‘나’는 ‘상훈’이 조금도 그 돈을 아까워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격렬한 감정을 느낀다. ‘나’와 ‘상훈’ 사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이 갈등은 ‘가난’이라는 요소로부터 파생된다. ‘나’의 가족들에 대한 회상이 중요한 이유는 가족들의 동반 자살이후 가지게 된 가난에 대한 ‘나’의 심리적 반응이 ‘상훈’이 가지고 있는 그것과 상반됨을 확연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난’을 둘러싼 심리적인 반응은 ‘어머니’, ‘나’, 그리고 ‘상훈’의 세 측면으로 나눌 수 있고, 크게는 ‘어머니’와 ‘나’, 그리고 ‘상훈’의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 가난을 대하는 반응의 차이가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같은 입장에서 ‘가난’을 바라본다. 하지만 ‘상훈’은 그 두 사람과 ‘가난’을 바라보는 위치가 전적으로 다르다.
‘나’의 가족에서 제일 주된 인물은 ‘어머니’이다. ‘어머니’가 가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심리적 반응은 경멸과 혐오다. 가난을 직면해야 하는 상황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허영을 버리지 않으며 가난으로부터 눈을 돌린다. 가난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이들의 특이한 발랄함을 경멸하고, 매캐하고 시척지근한 냄새로 형상화 되는 가난의 냄새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할 정도의 반감을 보이며, 마침내 ‘나’를 제외한 가족들과 동반 자살을 택함으로써 가난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어머니의 이러한 반응 양상은 ‘나’의 심리적 반응 양상에도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나’는 가난을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난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자신처럼 살아가는 비슷한 이들을 향해 특유의 ‘발랄함’,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다는 긍정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살고들 있어요’라는 표현을 통해 그들 나름대로가 지켜가고 있는 삶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동반 자살을 선택한 가족들에 대한 저항의식이 강하다. 죽은 가족들을 ‘찌개 속의 멸치처럼 눈을 동자 없이 하얗게 뒤집어쓴 추한 주검’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은 소설의 첫 시작에서 등장했던 멸치의 이미지와 교차되고, 아침상에 올라온 멸치를 보란 듯이 먹었던 행동은 가족들이 남기고 간 가난을 보란 듯이 대수롭지 않은 듯 여기며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과 교차되어 ‘나’의 이러한 심리적 반응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가난의 냄새를 싫어하면 ‘안 된다’는 표현에서 가난에 적응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의무감’을 느낄 수 있다.
‘상훈’의 태도는 위에서 살펴 본 ‘어머니’ 그리고 ‘나’의 심리와 확연히 구분된다. 부잣집 도련님이며 대학생이기까지 한 그에게 있어 ‘가난’은 방학 동안 삶을 경험하기 위해 ‘선택’하게 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가난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고 있으며, 그러므로 3만원이 넘는 돈을 폐병쟁이에게 가져다주면서도 전연 아까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상훈’ 혹은 그로 대표되는 부자들에게 있어서 ‘가난’은 빛을 부각시키기 위해 필요한 어둠처럼, 자신들이 가진 것의 가치를 더 잘 알기 위해 이용하고 마는 어둠에 지나지 않는다. ‘상훈’은 애당초 ‘가난’을 바라보는 위치가 다른 인물로 가난뱅이답지 않은 수려한 이목구비, 하얀 꽃무늬 종이 냅킨으로 풀빵을 싸먹는 행동, 짐짓 점잖게 멸치 눈깔을 신경 쓰는 모습, 3만원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 태도 등은 모두 그의 신분을 암시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볼 때 마다 시종일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낀다. 작품 전반적으로 제시되는 ‘상훈’에 대한 ‘불안’은 그에 대한 거리감과 이질감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역시 ‘상훈’이 ‘나’와 다름을 암시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ⅱ. ‘반동형성’으로 본 ‘나’의 심리적 양상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나’는 가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이러한 반응은 양가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작품의 후반에 가서는 그 태도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인공인 ‘나’의 심리가 이처럼 복합적인 양상을 띠는 이유를 알아보고자 정신분석학의 ‘방어기제’를 통한 분석을 시도해 보았다.
‘나’는 가난 그 자체를 완벽하게 수용하고 있다기보다는 ‘반동형성’ 기제를 사용하여 불안을 억누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동 형성’은 심리적 갈등 상황이나 불안에 대해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많은 ‘방어 기제’들 중 하나로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오히려 그에 반(反)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심리적 평형 상태를 유지하려는 행동을 뜻한다. ‘나’는 가족들에 의해 인정받지 못 했으며 홀로 가난 속에 남겨진다. 가족들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는 ‘가난’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반동 행위로 발현되며, ‘가난’과 ‘가난을 수용한 이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표현함으로써 불안을 방어하고자 한다. 가난에 대한 강박적 적응 양상은 이러한 심리의 발현 양상으로 볼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난을 부정하고 회피하여, 죽음이라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도피를 이루어 낸 ‘어머니’에 대해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남겨진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일류 재봉사가 되리라는 공상과 ‘상훈’과 자신이 서로 좋아하고 있으며 언젠가 그가 청혼하리라는 희망은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은 ‘가난’에 대한 본질적인 불안을 상쇄시켜주는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상훈’이 돌아와 신분을 밝힌 순간. 즉, 그가 돌아오리라는 기적이 기만이 된 그 순간, ‘나’는 이전까지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던 모든 방어막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의해 부정당한 것은 단순히 그를 좋아하고 있었던 ‘나’의 진심과 그도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던 믿음일 뿐만 아니라, 가난 한 가운데에서 꿈꾸었던 미래이기도 하다. 또한 ‘상훈’은 여태까지 ‘나’가 반항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던 ‘현실’을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한다. 가족의 죽음 이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가난이라는 소명이, 부자들에겐 하나의 에피소드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해 부정당한 현실에서, ‘나’의 가난은 다만 무의미하고 추하며, 더러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억척스럽게 버텨온 ‘나’의 작위적인 발랄함은 여기서 전복되고 만다. ‘상훈’을 쫓아내고 난 뒤 돌아온 ‘나’의 방에서 ‘나’는 ‘상훈’에 의해 나의 가난을 ‘도둑맞았다’는 생각을 하며, 단순히 소유하고 있던 것들을 빼앗겼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절망’을 느끼게 된다. 이는, ‘나’가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 했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반동형성을 통해 지켜왔던 자존감과 가난에 대한 태도와 사상을 모두 잃었음을 의미한다.
작품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 하여, 작중 인물의 내면에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독자들은 ‘나’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감상하게 되며, ‘나’의 진심과, 가족사를 엿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독자는 ‘나’와 ‘상훈’의 갈등 상황에서 ‘나’에 초점을 두게 되고 ‘나’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전달 받는다. 이는 작품의 후반부, 상훈이 ‘나’의 진심을 전혀 자각하지 못 하고 있었음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에 대한 감정 이입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며, 작품의 마지막에 느끼는 ‘나’의 절망에 깊은 연민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근대 산업화 이후 빈곤과 빈부격차는 항시 문제가 되어 왔다. 많은 작품들이 그러한 사회상을 작품으로 녹여내고자 시도 했으며, 본 작품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은 경제 성장과 함께 대두 된 문제들을 일상적인 공간의 일상적인 인물을 통해 사실적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난’을 둘러싼 ‘나’, ‘어머니’, ‘상훈’등 다양한 인물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입장과 관점을 보여 줌으로써 다양한 논의를 가능케 했다. 특히 ‘나’와 ‘어머니’의 가난에 대한 서로 상반된 태도는 심리적인 면에서 분석할만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복합적인 심리 양태가 작품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으며, 그와 같은 심리적 대응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파악하는 일은 작품이 가진 내적인 의의를 파악하는 일과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70년대’라는 한정 된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오늘 날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능케 하는 보편성에서, 작품이 가질 수 있는 의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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