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친족 제주도의 가족 및 친족 구성
2. 제주도 남동부 중산간 S마을 A씨의 사례
제주도의 가족과 친족 구성에 대해 살펴보기 위한 사례조사를 하였다. 제주도 남동부 S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A씨의 삶을 다음과 같이 가족과 관련된 의례 중심으로 서술한다.
- A씨의 탄생 : A씨는 1955년 출생한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말기, 징병으로 일본에 다녀 온 이후, 해방공간에서 열심히 살았으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다. 그의 아버지에게는 딸이 있으니, 그 보다 9살이 많은 누님이다. 즉, 딸 출생 이후로 수년 간 아들이 없어, ‘은 각시’를 얻어 A씨 낳았으나, 몇 달 뒤 본처에게서 또 다른 아들이 태어난다. 이로써 A씨는 그의 아버지 가족과 떨어진 채, 그를 낳은 생모에 의해서만 S마을에서 길러지게 되었다. A씨의 아버지는 그렇게 얻은 아들 이후로, 2명의 딸을 더 얻었으며, 제주시에 살았다.
- 가족의 형성(A씨의 결혼-통혼권) : A씨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중, 아는 분과 함께 바로 위의 P 마을로 일을 하러 가게 된다. 그곳은 아는 분의 친척집으로 지붕개량공사를 하러 간 것이었는데, 젊은 나이다 보니 어쩌다 그보다 3살 밑인 그 집의 큰 딸과 눈이 맞아 연애를 하게 된다. 1~2년 연애를 한 결과, 둘은 결혼을 하게 되어,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게 된다. A씨는 슬하에 1녀 2남의 자식을 두었다.
- 제사의 시작 및 제사분할의 확립 : A씨의 9살 많은 누님은 공직에 근무하고 있었으며, 결혼을 하여 자식도 낳았으나, 몇 년 안 되어 이혼해 살고 있었다(높은 이혼율). 그러던 중 A씨의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 또한 돌아가시자, A씨의 누님이 이 두 분의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왜냐하면 A씨의 배다른 남동생은 결혼도 아직 안했고, 직업도 변변치 못해 부모님의 제사를 지낼 수 없었기에, 경제적 능력이 있는 그의 누님이 대신 제사를 지내다, 나중에 남동생에게 물려주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A씨의 조부모가 돌아가시게 된다. 때는 A씨가 결혼 한지, 4~5년 정도 지난 때 였다. A씨는 결혼 이후, 아내와 함께 자기가 살던 S마을에서 집을 빌려서 살고 있었는데(그의 어머니와 분가), 조부모가 사망하자 그들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조부모가 살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A씨는 조부모가 지내던 그의 증조부모 제사도 함께 지냈다.
이로써 A씨가 S마을에서 (증)조부모의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고, 부모의 제사는 A씨의 누님이 제주시에서 지냈기 때문에, ‘제사분할’이 확립되었다.
- 제사분할의 종료 : 조부모의 제사는 농촌에서, 부모의 제사는 도시에서 지내는 과정에서 A씨와 그의 배다른 남동생은 기일에 맞춰 서로의 집에 ‘식게먹으러 댕겼다’. 그러던 어느 날, A씨의 배다른 남동생이 암에 걸려 5년 간의 투병생활을 한 끝에 사망하게 되었다. 결국 A씨의 아버지가 낳은 아들은 유일하게 A씨 뿐이 되었다.
장례를 치르면서 A씨의 배다른 남동생의 제사를 누가 지낼 것인가가 친족사이에 문제로 제기되었다. 이 상황에서 A씨는 결단을 내려 자신이 지내겠다고 했다. 더불어 누님이 지내던 부모의 제사도 동시에 자신이 지내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A씨는 누님의 나이 또한 60세가 넘었기에 혼자 제사를 지내기엔 벅차다고 느꼈으며, 또한 원래는 그의 배다른 남동생이 결혼도 하고, 생활도 안정되면 물려받을 것이었으나, 이제는 ‘자식도 없이’ 사망했으므로 이왕 제사를 지낼 것이면 다 자신에게 가져오는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20여 년 간 지속되던 제사분할은 마침표를 찍고, A씨는 그의 (증),(조),부모와 배다른 남동생의 제사, 즉 1년에 7번의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다.
참고로 A씨의 배다른 남동생은 사망 당시, 남겨진 재산이 거의 없었으나, 사망보험금의 경우 그의 4형제가(누님, A씨, 두 여동생) 동등하게 배분하였다(재산상속).
- 문중과의 제사/차례/벌초 분할 : A씨의 증조부는 독자이며, 조부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각 1명씩 있었다. 조부의 남동생, 즉 A씨의 작은아버지는 아들을 4명 두었으니(그 중 1명 실종, 1명 사망), 그들이 A씨의 사촌동생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제외하고는 가까운 친족이 거의 없으며, 문중과 갈라진 것은 그의 고조부 때부터 였다.
A씨는 고조부와 같은 항렬의 할아버지들 제사를 지낼 때 까지만 하더라도, 같은 동네에 사는, 촌수로 가장 가까운 친족들과 제사/차례/벌초를 함께 했다. 그러나 몇 년 전, 더는 고조부 항렬의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자, 그들과의 연계가 사라졌기 때문에 제사와 차례를 같이 지내지 않게 되었고, 고조부와 그 위 조상들의 벌초를 하는 ‘문중벌초’에만 참석하고, 가지벌초는 자신의 형제와 사촌들끼리만 한다. 참고로 제월전이 있기는 하나, 문중의 큰댁 명의로 등기되어 있으며, 땅 매매시 큰댁 이외에 어떠한 친족도 문제제기나 대금의 분배를 받지 못하였다.
김혜숙, 1999, 『제주도 가족과 궨당』, 제주대학교 출판부.
이창기, 1995, “제주도 가족제도의 특징”, 『제주사회론』, 한울아카데미.
이창기, 1998, “제주도의 제사분할”, 『제주사회론2』, 한울아카데미.
기든스, 앤서니, 1996, 『현대사회학』, 을유문화사.
律波高志, 1999, “濟州의 通婚圈에 관한 再檢討 - 安德面 德修里의 사례를 중심으로”, 『탐라문화』20호,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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