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술과 정치_382
건국의 유능한 기술자
친일파 출신 경찰의 상징적 존재, 좌익색출과 박멸의 탁월한 기술을 가진 노덕술
: 고문 전문가인 그는 혁조회 사건을 계기로 승승장구하여 경시 자리까지 승진하였음. 이것은 일본 경찰도 쉽게 오르지 못하는 고위직이며, 보통학교 2년 중퇴 학력의 인물이 이룬 입지전임. 해방 후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으로 근무하며 좌익계 독립운동가 검거와 고문수사로 맹활약하다 고문치사 사건에 연루되어 피신해 있던 중 반민특위 특경대에 체포됨.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적극적인 주장에 의해 풀려나고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을 거친 후, 고향인 울산에서 국회의원 출마까지 하는 등 영화로운 일생을 보낸 인물. 친일분자였지만 생계형이었고 더욱이 해방된 조국 건설을 위해 필요했다던 그의 변호론은 21세기 현재에도 친일과거사 청산 무용론, 회의론의 근거가 됨.
◆ 두 인물의 삶에서 던지는 질문
(1) 인간은 사회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2) 선택한다는 행위가 책임을 동반한다면,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가?
(3) 선택의 결과로 출세했다 하더라도 개인이 구조적 문제에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친일협력자들은 사법적정치적윤리적 책임을 면제받았으며, 나아가 한
국정부와 지배세력의 핵심으로서 권력과 부영광을 누림. 독립운동가 중 상당수는 해방 조국에서 옛 고등계 형사들에게 취조 받음. 이후로도 오랫동안 친일파가 부활한 역사에 대해 교과서는 침묵했고, 언론도 입을 닫음. 친일파 연구는 학계의 금기 사항이 됨.
오랫동안 대한민국에서 역사는 권력을 장악한 집단의 공식기억이 독점하는 영역. 대항기억은 은밀한 형태로만 전해짐. 역사가 서로 다른 기억 사이의 경합이라는 형태로 본격적인 정치투쟁의 영역이 된 시기는 군부독재의 가능성이 사실상 소멸한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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