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절대주의’국가의 개념등장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에는 두 가지 상이한 형태의 정체가 지배적이었다. 프랑스,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러시아 등의 ‘절대적’군주국이 그 하나이고, 영국 및 네덜란드의 ‘입헌적’군주국과 공화국이 다른 하나다. 특히 국가와 사회의 관계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 차이점들은 실제보다 더 두드러진다. 우선 절대주의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절대주의를 특징짓는 것으로는, 대규모의 강력한 정치 구조 안으로 소규모의 취약한 정치 단위들을 흡수하는 것에 기초한 국가형태의 등장, 통합된 영토에 대한 통치 능력의 강화, 재정관리의 변화와 확대, 영토 전역에 대해 집행되는 강화된 법 질서 체제, 단일의 최고 지배자에 의한 좀 더 ‘지속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효율적인’ 통치의 적용 등이 있다. 이런 변화는 위로부터의 ‘공적 권위’의 실질적 증대를 의미했다. 분명 절대주의 통치자들은 자신만이 국가 업무에 대한 정당한 결정 권한을 갖는다고 선포했다. 이런 견해를 가장 뚜렷이 선언한 이는 루이 14세였다. 그에 의하면, 절대주의 군주는 세속법의 모든 문제에 대해 궁극적 권위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왕의 정통성은 ‘신이 부여한 권리’에 기초한 것이었다.
절대주의 군주는 점점 중앙집권화된, 또한 불가분의 최고 권력에 대한 주장에 입각한 통치 체제의 정점에 위치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한 해석에 따르면, 국가의 행정 권력이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상당 정도 사회 구성원에 대한 국가의 정보수집과 축적 능력이 신장되고, 이에 따라 신민들에 대한 국가의 감독 능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점으로서의 권력 집중 현상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행정 권력이 증대함에 따라 국가가 협력적 방식의 사회관계에 의존하게 되는 측면도 커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통치자와 피치자 사이에 더욱 큰 상호 관계가 형성되었고, 더욱 큰 상호 작용이 수반되었다. 요약하면, 절대주의는 그 자체 내에, 새로운 형태의 국가권력을 발전시키는 추동력과 그것을 제한하는 추동력을 함께 창출한 것이다.
(2)종교개혁
적절한 국가형태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촉발하는 데 기여한 사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일 것이다. 종교개혁은 유럽 전역에서 단지 교황의 지배권과 권위에 도전한 것 이상을 수행했다. 종교개혁은 가장 단호한 방식으로 정치적 의무와 복종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16세기 후반기 유럽 전역에는 격렬한 종파 간 분쟁이 만연했고, 이는 독일의 30년 전쟁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런 사태는 어떤 특정 신앙을 떠받들 통치자의 의무로부터 국가권력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졌다. 경쟁적 종파들 모두가 중세 교회가 주장했던 그런 종류의 특권을 스스로 확보하려 함으로써 야기된 통치의 딜레마를 뚫고 나갈 방법은 그 길밖에는 없었다.
또한 루터와 칼뱅의 가르침은 그 핵심에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라는,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개념을 담고 있었다. 새로운 교리에서 개인은 신 앞의 단독자, 모든 행위의 주권적 심판자, 신의 의지를 해석하고 이행하는 데 직접 책임지는 존재로 이해되었다. 이는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의 개별 행위자라는 관념을 심어주었으며 도덕적 종교적 실천과 직접 충돌하지 않는 모든 영역에서 세속적 활동의 자율성을 인가했다. 이런 사태의 진전은 국가와 사회의 본질을 새롭게 재검토하도록 크게 자극했다.
(3)신대륙의 발견
비유럽 세계의 발견에 따라 다양한 사회, 정치 제도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유럽에서 늘어나게 되면서 이런 자극은 더욱 강화되었다. 유럽과 ‘신세계의 관계, 비유럽인의 권리의 성격 등에 논의의 초점이 맞추어졌고 이에 따라 정치의 본질에 대한 복수의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더 선명해졌다.
자유주의의 특징
(1) 자유주의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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