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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
재현은 언어나 이미지를 사용해 주변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미지를 통해 눈에 보이는 세상을 이해하거나 규정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시각 미디어와 같은 재현 체계가 동원된다. 물질세계는 재현 체계에 의해 의미를 가지게 되며 시각적으로 보일 수 있게 된다.
이미지는 자연, 사회, 문화에 관련된 다양한 정서와 상상속의 세계나 추상적인 개념의 재현에 사용되어 왔다. 언어와 시각적 재현 체계가 이미 존재하는 실제를 반영하며 사실, 감정, 상상력에 대한 이해를 만들고 재구성하는 수단이 된다.
정물화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이미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그 묘사가 아무리 생생하다고 해도 그 이미지는 단순히 특정 장면의 반영이라기보다 어떤 상징성을 내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음식과 음료는 단순한 구성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라져버리는 유형물을 통해 삶의 덧없음을 표현한 철학적인 사고와 암시의 상징화된 이미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음식과 음료가 가진 의미에 따라 단순한 음식의 재현인 이미지의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림이 사물에 내재된 의미를 반영하는 것을 넘어, 이미지가 그것에 관한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재현을 통해 우리는 주변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단순한 장면에서도 그로부터 파생되는 의미가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주어진 문화적 맥락에서 재현 체계의 관습과 틀을 학습하게 된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그림 에는 프랑스어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쓰여 있다. 그림속의 파이프는 실제 파이프가 아니라 회화 작품으로 파이프가 재현된 이미지이다. 마그리트는 그림 속의 텍스트를 통해 언어와 사물의 관계를 함축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재현의 과정 속에서도 단어와 이미지가 주변 세계에 만들어내는 의미의 복합성을 알리는 재현 체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진적 진실’의 신화
사진을 포함한 이미지는 늘 어느 정도 주관적 선택을 거치게 된다. 선택, 프레이밍, 개인적인 기호 등에 따라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 나름대로의 주관이 개입되는 것이다. 감시카메라조차 카메라에 프로그램을 입력하고 정해진 방식으로 특정 공간을 프레임 하는 누군가가 개입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 촬영에는 기계적인 객관성이 존재한다. 기계를 통한 전자 이미지는 회화나 드로잉에 비해 객관적이라고 평가되어 왔고, 카메라로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사진가의 주관성과 기계적 객관성이 혼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진은 19세기 초 시각적 증거 자료를 통해 경험적 사실을 입증하고자 하는 실증주의자들의 객관성 유지를 위해 만들어졌다. 인간의 중재보다 기계적인 힘을 통해 객관적 사실을 기록하기 위한 재현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이 과연 세상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계속 되어와 최근의 디지털 이미지에까지 이어진다. 사진은 현실을 중재 없이 복사할 수 있지만 실재는 삶의 표면만을 담을 뿐이다. 사진은 상대적으로 쉽게 조작될 수 있음에도 실제 사람과 사건, 과거 사물들의 증거로 이해되고 있다. 이를 ‘사진적 진실의 신화’로 볼 수 있다. 특히 컴퓨터 그래픽으로 조작된 이미지는 객관적인 사건의 기록이나 진실의 기록으로서 사진을 왜곡시킨다.
사진 이미지는 표면적으로 사실적 증거 자료나 기록으로 여겨지지만 그 이면에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경우도 있다. 바르트(Roland Barthes)는 사진의 이러한 두 가지 개념을 ‘외연적 의미’와 ‘내포적 의미’로 구분했다. 이미지의 외연적 의미는 기술적인 의미를 뜻하고 내포적 의미는 문화적 맥락에서의 특별한 의미로 볼 수 있다. 바르트는 이미지의 내포적 의미와 관련된 문화적 가치관이나 믿음을 ‘신화’라고 표현한다. 신화는 특정 집단의 감추어진 규칙이나 관습이 사회 전체에 보편화 되는 것이며, 신화를 통해 특정한 사물이나 이미지 속에 내포된 의미가 외연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카메라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는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대중의 기대치에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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