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교육 현장론 기독교교육현장의
1. 예배 공동체
성서의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 인간의 감사와 헌신의 응답 사이에서 생겨나는 만남의 사건이었다. 신학적으로 정의된 진정한 예배는 ‘전 회중의 교화’(edification)를 동반하며 예배가 곧 교육행위라고는 말할 수 없으나 예배는 그 안에 강력한 교육적 역학을 지니고 있다.
1) 성막(Tabernacle)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명령을 통해 생겨난 ‘성막’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속적인 현존과 말씀, 그리고 그분의 구원 앞에 감사와 찬양으로 응답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예배와 만남을 이루는 공동체로서 이해된다. 폰 라트(von Rad)는 에서 이 ‘성막’이야말로 이스라엘을 만나 주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현장이었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을 통해 성막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선포되는 자리였고, 동시에 이스라엘이 이를 경청하고 응답하는 자리였다고 하였다.
한 마디로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교육하는 가장 중요한 현장이었다.
2) 성전(Temple)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하나님의 ‘법궤’와 ‘성막’을 하나로 종합하여 이스라엘의 종교적 관심을 하나로 묶어 놓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전이었다. 성전은 정치적 통일의 상징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솔로몬 왕의 절대왕권을 대변하는 종교적 상징이었다. ‘성막’이 종교 공동체였다면, ‘성전’은 재정왕국의 구현이었다. 성전 제사는 로마 카톨릭교회와 정교회의 미사에 신학적인 공헌을 남겼으며, 개신교회에는 예배갱신 운동(특히 WCC의 Lima Liturgy)에도 많은 영향을 남겼다.
그러나 이블린 언더힐(Evelyn Underhill)은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 본능을 충족시켜 주는 ‘종교화’로 흘렀다고 말하며, 이로 인해 성전 종교는 ‘성막’ 신앙이 가졌던 종말론적 의미를 상실했고, 제사주의와 안정을 축복하는 형식주의로 빠졌다고 비판했다. 교육현장론의 관점에서도 성전은 종말론적인 신앙을 상실했다는 것과 성막이 지녔던 교육적 역할이 사라진 채 민족을 교육하거나 변화시키는 기준은 되지 못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3) 회당(Synagogue)
학자들은 ‘회당’의 역사적 기원은 6세기 바벨론 포로시대로 보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정치적 패배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하였던 영적 공허는 새로운 의미와 형식의 ‘예배와 교육’을 요청하게 되었고 이것이 회당의 배경이 되었다. 또한 회당은 유배당한 유대인들의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공동체적인 삶 모두를 집약한 종합적 공동체였고, ‘성전’문화의 대치’로서가 아닌 ‘병행적 위치’로 등장하였다. 예배 공동체로서 ‘회당’은 다섯 개의 예배 부분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명기와 민수기의 말씀을 낭송하며 신앙을 고백한 ‘쉐마’(Shema), 18개로 구성된 기도문을 함께 드리는 ‘축복의 기도’(Benedictions), 모세 5경인 토라(Torah)를 낭독하는 ‘성경 봉독’, ‘예언자의 글을 읽는 일’, 그리고 제사장의 ‘축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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