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보다 앞선 사유
겉에서 보기에는 평화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나, 그들은 법이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정당한 폭력으로 나라를 다스린다. 사람들은 기꺼이 그러한 국가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고 있다. 동(同)의 원리로써 뿌리 없이 그리고 물음 없이 획일화 하려는 세계화는 패권적 지배이며 일방적인 강제와 오만이다. [더불어숲] 신영복
우리는 따라서 인간사를 이끌고 있는 “폭력”이라는 단어에 유의해볼 필요가 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폭력이란 무엇일까? 폭력(暴力)은 사전적으로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주먹이나 발 따위의 수단이나 힘이며, 넓은 의미로는 무기로 억누르는 힘을 이른다. 그러한 폭력의 종류로는 보편적으로 가정 폭력이나 성폭력과 같은 사회적 폭력, 문화적 폭력 그리고 정치적 폭력 등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정치적 폭력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2. 본론
인류의 장대한 역사를 보면 인간만큼 잔인하고 폭력적인 동물은 없어보인다. 인간만이 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선량한 시민이나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비록 그것이 위선이어도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짐승’이라고 부르는 동물들의 악으로 보이는 행위도 결국 사람의 폭력성과는 차원이 다르다.
폭력성은 인간 내면에 있는 동물적 본성이라고 볼 수 없다. 요즘 일어나는 극악무도한 범죄 사건들을 다루는 기사들을 보면 “짐승보다 못한”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 표현들은 잘못된 전제로 시작되었다. 인간과 동물이라는 범주를 이분법으로 갈라 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이트는 ‘본능이 인간 속의 동물성을 의미한다면, 우리를 일컫는 이성적 존재 안에 구현된 길들이기 힘든 속성이 있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토템과 터부] 지그문트 프로이트
고 말한다. 여기서 길들이기 힘든 속성이란 배고플 때, 식사를 앞에 두고 기다리려면 안절부절 못한다거나, 몇 달 동안 성욕을 풀지 못한 부부가 각각 자기 위로를 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만약 자신이 선량한 시민이라고 해서 자신은 지극히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스스로 욕망을 거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거세한다는 표현이 과하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욕구를 철저하게 차단 시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끝내는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남을 헐뜯고 복수심을 가졌다는 죄 몫으로 회개를 한 기독교인이 교회 밖으로 나와 죄를 지은 자신이 거울에 비취자, 가슴을 치며 자책하는 모습을 들 수 있다. 니체는 ‘타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가 극도의 즐거움으로 여겨진다’고 말했고, 그것을 하나의 축제라고 상기시킨다. [도덕의 계보] 프리드리히 니체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주장했던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즉, 카니발(Carnivore: 육식) 축제 [리바이어던] 토마스 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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