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운동과 한국교회 자본주의 비판 민중운동과 한국교회 자본주의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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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중운동과 한국교회 자본주의 비판 민중운동과 한국교회 자본주의 비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우리는 지난 시간 사회복음이 발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자유방임주의라는 경제체제하에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들이 있었고 미국 교회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사회복음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근대국가의 자본주의는 국가가 경제활동에 개입하지 않고 개인 능력에 일임하는 자유방임주의를 토대로 발전했다. 자본주의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양식은 무엇일까? 자본주의는 어떠한 성격을 띄고 있어 칼 마르크스의 비판을 받으며 사회주의와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번 발제를 통해 자본주의의 생산양식, 칼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본주의와 그로인해 생기는 인간의 소외 문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
자급자족의 가족경제에서는 가족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재가 생산되었다. 이를 자기생산이라고 한다. 중세의 도시경제에서는 타재와의 교환을 위하여 재의 생산이 이루어졌다. 이를 주문생산이라고 한다. 반면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팔아서 이윤을 얻기 위하여 재가 생산된다. 이와 같은 생산양식을 상품생산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 교환이 이루어졌던 것은 자기의 직접적인 욕망충족에 필요한 재를 얻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면, 밀의 소유자는 이것을 팔아서 화폐로 바꾸고 이 화폐로 직물을 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교환은 마르크스의 정의에 따르면 W(상품) → G(화폐) → W(다른 상품)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에 대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는 자본으로서 작용한다. 자본가는 화폐자본으로써 생산수단을 사들이고, 이것을 사용해서 재를 생산하며, 이것을 팔아서 먼저 투하한 화폐보다도 큰 화폐액을 획득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교환은 G(화폐자본) → W(상품) → G(=G+g)의 형식으로 표시된다. 이 식에서 g는 이윤이며, 이것을 획득하기 위한 생산이 상품생산이다. 마르크스는 이것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즉 자본가는 노동자에 대하여 그 노동력의 가치에 상당하는 임금을 지급하고 실질적으로는 그 가치 이상의 일을 시킨다. 이 가치 이상의 노동에 의해서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동력의 가치가 6시간분의 생산물과 같다고 하면, 자본가는 그만큼의 임금을 지급하고 노동자를 8시간 작업시킬 수 있다. 이 경우 2시간분의 생산물이 잉여가치이며, 이 부분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한 것이 된다. 이에 대하여 근대경제학자들은 이윤은 자본의 제공자에 대한 정당한 보수라고 생각하였다. 상품의 가치는 노동과 생산수단의 결합에 의해서 창출되며, 그 가치는 노동자와 자본가에게 각각의 기여도에 따라 분배된다. 이윤은 노동자를 착취한 결과가 아니라 자본의 공헌에 대한 보수라는 것이다. 이윤이 착취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견해를 달리하고 있으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윤획득이 인정되고 있으며 이를 획득하고자 생산이 영위되고 있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본주의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큰 특징 3가지는 첫째, 생산의 목적이 이윤 추구에 있고 둘째, 모든 생산물이 상품으로 유통되고 소비되며 셋째, 노동력이 상품화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특징들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사회에서도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노동력의 상품화는 오직 자본주의에만 있는 유일한 특징이다. 노동력이 상품화되고 노동자가 잉여가치를 생산해야 비로소 자본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물건을 교환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은 노동이다. 노동이 물건의 가치, 곧 자본주의에서 상품의 가치이다. 상품 가치의 실체는 노동이고, 그것의 가치량은 노동의 시간으로 나타낸다. 노동은 노동자가 노동력을 가지고 일하는 것, 노동력은 노동자가 일하는 능력을 말한다. 노동자들이 받는 것은 노동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노동력에 대한 대가 즉, 일한 결과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일하는 능력에 대한 대가이다. 자본가와 노동자는 똑같은 사태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다. 자본가는 노동력의 가치, 일하는 능력의 가치에 맞는 임금을 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노동자는 일한 결과의 가치에 맞는 임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더라도 이것은 노동력의 가치를 제대로 쳐주는 것이지 노동의 가치대로 임금을 주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는 이미 잉여노동을 착취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노동 수단과 노동 방법에 변화를 통해서 노동 생산성 상승을 얻는다. 그로 인해 전체적인 노동 시간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필요노동 시간은 줄이고 잉여노동 시간을 늘리는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을 추구한다. 노동 생산성의 상승을 통해 물건의 가치가 낮아지고 물건 가격이 낮아지면 노동자들이 이전보다 적은 임금을 가지고 노동력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자본가는 이것은 근거로 이전보다 임금을 적게 줘도 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 임금을 받으면서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임금을 받지 않고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으로 필요노동 시간이 줄어들고 잉여 노동 시간이 늘어났다고 표현한다. 잉여노동 시간이 길어지면 자본가는 더 많은 잉여가치를 챙기게 된다. 노동생산성이 상승하면 노동자들은 그만큼 노동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자본가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잉여노동 시간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소외론
소외는 원래적인 것 (das Eigence)과 낯선 것 (das Fremde)의 구분에 의해서 발생한다. 원래적인 것으로부터 낯선 것의 분리, 낯선 것에 의한 원래적인 것의 대체, 낯선 것에 의한, 원래적인 것의 지배는 모두 소외에 해당한다. 소외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행위자 자신으로부터의 소외, 행위 자체로부터의 소외, 행위과정으로부터의 소외 행위 결과로 부터의 소외가 그것이다. 그리고 또한 소외는 행위자의 행위결과가 행위자 자신과 분리되어 행위자에게 낯선 존재로 대립할 뿐 아니라 행위자를 지배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소외론은 사회압력의 작용에 의한 개인과 사회 사이의 순환을 설명한다. 스스로 자기 자신이 아니고 스스로 원하고 있는 행위를 하고 있지 않으며 스스로 자신의 행위의 결과에 책임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행위의 결과가 다시 스스로를 자기 자신일 일 수 없게 만드는 힘으로 자신에게 다시 되돌아오는 순환이 소외의 순환이다. 소외는 사회 압력에 의해 일어난다. 사회 압력은 사회구성원들의 행위의 산물로 발생하지만 한번 발생한 사회 압력은 사회구성원들의 행위에 의해 점점 더 강화되고 확대되며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발생한 사회 압력은 생명력을 갖고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을 재생산 하는 것이다. 사회 압력에 의한 행위조건 →그 조건에서의 행위→의도하지 않은 행위결과→사회 압력의 재생산→사회 압력에 의한 행위조건으로 사회 압력은 스스로를 재생산 한다. 그것은 사회 압력의 행위조건에서 시작하여 다시 사회 압력의 행위조건을 재생산하는 순환과정으로 되어있다. 소외론이 말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힘이나 인간관계가 스스로를 자기자신이 아니게 만들고 있고, 자기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힘이나 인간관계에 의해 행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소외를 노동자에게만 적용하였다. 마르크스의 소외론 에는 네 가지 노동자의 소외가 있다. 노동자 자신으로 부터의 소외, 노동 자체로부터의 소외, 노동과정으로부터의 소외 노동결과로부터의 소외가 그것이다. 소외 개념은 노동자가 일하면 할수록 노동자는 점점 더 궁핍해진다 는 사실과 노동자의 노동의 결과가 노동자로부터 분리되어 노동자에 대립할 뿐 아니라 노동자를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연상하게 한다.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통한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지배를 소외의 원인으로 규정하였다.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노동자들은 노동, 노동과정, 노동결과물로부터 소외될 뿐 아니라 유적 존재로서 인간임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노동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또한 자신의 노동과정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며 자신의 노동결과물도 자신과 분리되어 결국 자신과 상관없는 존재가 될 뿐 아니라 자신의 노동결과물에 의해 스스로 지배된다는 것이다.
노동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노동자를 소외시킨다. 노동자는 더 많이 생산하면 할수록 자신은 점점 더 적게 소비하게 되고,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할수록 자신은 가치가 없어지고, 자신의 생산물이 멋진 형태를 갖추면 갖출수록 자신의 모습은 엉망이 되며, 자신의 산물이 문명적이 되어가면 갈수록 자신은 야만적이 되어가며, 노동이 점점 힘을 가지게 되면 될수록 노동자는 무력해지며, 노동이 점점 영혼이 풍부해질수록 노동자는 영혼을 잃어간다
마르크스 소외론의 중심에는 노동자의 소외와 생산관계가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생산관계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노동자 사이의 관계를 가리킨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노동자는 직접 생산을 하고,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는 생산에 참여하지 않음에도 노동자의 노동생산물을 취득함으로써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생산물과 분리된다. 노동자의 노동생산물은 그로부터 더 나아가 노동자에게 낯선 존재가 될 뿐 아니라 노동자를 지배하는 존재롤 노동자에게 되돌아온다. 마르크스의 소외론에서 소외의 동력은 자본가의 소유욕이고 자본가의 탐욕이다. 노동자는 자본가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인 것이다. 자본가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동자로 하여금 개인의지와 상관없는 노동을 하게 하는 것이고, 소외된 피지배자의 행위에 의해 피지배자에 대한 지배자의 지배력이 높아지는 과정이다.
마치면서
하나님은 직접 세상을 창조하시는 노동을 하시면서 우리에게도 창조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권리는 주셨다. 우리는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지고 노동하며 살아가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노동은 사람을 사람답게하는 노동이 아니다. 물질에 매여 무엇이 더 중요하고 우선적인 가치인지를 점점 잊어가는 현재 우리들은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노동을 잘 이루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물질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창조세계를 보존하고 질서를 지키는 노동을 해나가야 한다.
참고도서
소외의 사회학, 이홍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