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팔레스타인 분쟁 정치적 원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반유태인 운동이 전개되고 그에 대응하여 유태인들이 조국의 건설을 목표로 민족주의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면서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유태인들은 1897년 8월 스위스의 바젤에서 개최된 제1차 시온주의자회의에서 자신들의 조국을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설한다는 이른바 바젤계획을 채택하였다. 그들은 이 계획에서 ① 유태인 농업, 공업 노동자에 의한 팔레스타인 식민지화 촉진, ② 각 국의 법률에 따라 적절한 지역적 또는 국제적 기관에 의해 유태인 전체의 조직화와 결속 도모, ③ 유태인의 민족적 감정 및의식 강화, 육성, ④ 시온주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 국 정부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예비적 조치 강구 등을 결의하였다. 한편,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오스만제국의 약화와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미끼로 이율배반적 약속을 하면서 아랍민족과 유태인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책을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먼저 아랍민족의 협력을 얻어 오스만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 독립국가를 창설시켜준다는 약속을 하였다. 당시 주카이로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Henry Macmahon)은 1915년 1월부터 1916년 3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전시외교정책의 내용이 담긴 서한을 멕카의 태수 후세인(Hussein)에게 전달하였는데(맥마흔-후세인 서한), 그 내용은 한결같이 아랍인들이 참전하면 전쟁 종결 후 그 대가로 후세인이 요구하는 아랍지역의 독립(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국가 건설 포함)을 보장해준다는 것이었다. 아랍인들은 이러한 서한의 내용을 믿으면서 오스만제국에 반기를 들고 영국의 편에 서서 전쟁을 수행하였다. 영국은 유태인들에게도 똑같은 내용의 약속을 하면서 그들의 전쟁 지원을 유도하였다. 영국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유태인들을 이용하여 미국의 대독일 전쟁 참여를 유도하고 유태인 재벌들의 재정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1917년 11월 발포어(Balfour) 외상이 영국 국적의 저명한 유태인 로드쉴드(Rothshild)에게 서한을 보내 유태인들의 민족향토를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발포어 선언문). 그러나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이와 같은 약속을 모두 저버리고 1920년 4월 상 레모(San Remo)회의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라크 및 요르단과 함께 자신의 위임통치 하에 편입시켰다. 영국은 그 후 이 지역을 통치하면서 오히려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오는 유태인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취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태인들은 유럽으로부터 이 지역으로 대거 이주해오기 시작하였으며, 19세기 말 러시아와 폴란드에서의 반유태인 운동, 1933년 이후 나치 독일의 유태인 박해 등이 유태인의 이주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유태인들의 이주가 증가됨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태인 토지 소유가 늘어났으며, 이것이 아랍인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반유태인 운동을 촉발시켰다. 아랍인들의 반발은 반유태인 운동을 넘어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조직화로 나타났다. 아랍민족의 저항이 격화되자 영국은 유태인들의 팔레스타인 지역 이주를 규제하기도 하였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아랍민족의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 유태인 이주를 강력하게 억제하였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이미 준군사적 단체인 이르건(Irgun)과 하가나(Haganah)를 조직하여 반영국 테러를 전개하면서 국가의 창설을 추구하였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영국은 아랍민족과 유태인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1946년 7월 양측간의 협상을 주선하였다. 그러나 이는 유태인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그렇게 되자 영국은 1947년 4월 유엔사무총장에게 팔레스타인문제에 관한 특별회의를 소집하도록 하여 골치 아픈 이 문제를 유엔에 떠넘겼다. 이에 따라 11개 국가로 구성된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UN Special Committee on Palestine; UNSCOP)가 설치되었다. 이 위원회는 팔레스타인문제에 관한 조사를 실시한 후 1947년 8월 보고서를 작성하여 유엔에 제출하였는데, 내부의 이견을 조정하지 못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과 유태인의 지구로 분할한다는 다수안과 아랍인과 유태인을 포괄하여 연방국가를 창설한다는 소수안 두 가지를 건의하였다. 이에 아랍 측은 이를 모두 거부하고 소수민족의 권리와 성지 보호 의무를 지닌 팔레스타인 통일국가 수립 안을 독자적으로 제출하였다. 그러나 1947년 11월 29일 제2차 유엔총회에서 표결을 통해 다수안을 채택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 구역과 유태인 구역으로 분할시켰다. 유태인들은 이를 기꺼이 수락한 반면 아랍 측은 거부하였다. 마침내 유태인들은 1948년 5월 14일 텔아비브에서 다비드 벤구리온을 수상으로 하는 이스라엘 국가를 수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