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돌아보는 종교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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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대를 돌아보는 종교 학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멀치아 엘리아데(Eliade, Mircea, 1907.3.9~1986.4.22) : 통합적 세계관으로서의 현상학.
엘리아데는 명작 을 남겼다. 이 책에서 담고 있는 내용은 입문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기존의 현상학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즉 인류에 모든 것을 살펴보면서 인류를 지탱해온 보편적인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종교학은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전달해 주는 학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엘리아데는 오토가 의식의 한 양상이라고 규정한, 동시에 비합리적인 요소로 표현하고 있는 성스러움에 대해서 엘리아데는 오히려 이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더욱 포괄적인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다. 즉 다양한 측면에서 성스러움의 현상을 보여주려 한다. 오토는 성스러움이라는 것이 속된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그것과 정반대인 것이다. 즉 성스러움의 비합리적인 측면에 대한 논의 보다는 성스러움의 의미를 축소시키지 않는 상태에서 이것을 더욱 포괄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종합적인 형태론적 분석을 시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바탕 속에서 성스러움을 증명한 다기 보다는 다양한 차원에서 묘사하고 특징짓는다.
그가 동시에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종교적 감수성이 물씬 풍겨나는 곳과 종교적인 냄새가 사라져버리거나 고의적으로 은폐되는 곳이다. 전자의 경우는 엘리에데의 설명에 충실히 부합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면 산업화가 진행된 곳에서는 비종교적인 것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탈종교화가 이루어 졌다고 믿어지는 부분에서도 종교적인 냄새가 불분명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다만 문명이 계속해서 발달함에 따라 그것을 지각하기가 더욱 어려워 질 뿐이라는 것이 엘리아데의 의견이다.
그러나 종교적인간이라는 존재는 계속해서 우주 속에 남아 있으려는 성향을 가진다고 엘리아데는 생각했다. 이와 반대로 속된 인간 혹은 속된 사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분명 성은 속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나타나고 속 역시 성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나타난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상반성에서 그 양자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성스러움은 앞에서 설명한 대조를 통해서 드러낸다기 보다는 히에로파니를 통해서 드러난다. 그것은 성현, 즉 성스러움의 드러남이다. 즉 성스러운 것에 대한 무언가를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함께 이것은 인간의 종교적 태도를 전형화 시킨다. 쉽게 생각하면 이런 것이다. 우리가 하늘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 혹은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대체로 최고신, 천신과도 같은 것이다. 동시에 대지는 어머니로 상징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징들은 공통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식물, 물, 지하 기타 등등에 나타난다. 이러한 양상들은 하나의 일관되고, 상호 연관된 체계적인 측면들을 나타낸다. 이것을 파악하는 것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성스러움의 양식들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엘리아데가 가지고 있는 현상학이 기존에 것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자. 엘리아데 후설의 에포케를 빌려온다. 그것을 성년식을 바탕으로 설명하는데 엘리아데는 성년식 이전 단계를 속된 상태이며 성년식을 통해서 속된 상태인 ‘자연적 태도’ 세계가 존재함을 소박하게 믿어버리는 일상의 비 성찰적 태도. 실증주의에서는 의식의 외부에 대상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즉 경험의 주체와 대상을 ‘이미 주어진’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후설은 바로 여기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를 극복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엘리아데는 에포케를 하고 현상학적으로 환원시키면 여기서 실재적인 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종교인이든 종교사학자인든 종교 현상학자인든 간에 원초적인 것에 파악 할 수 있다는 셈이다. 엘리아데는 그 구조(원초적인 것)를 바라보는데 있어 손상되지 않는 방법으로 에포케를 택한 것이다. 이것을 통해 이미 구조로 접근하는 그 가느다란 끈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 구조로 접근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자크 바르덴부르그(?~?) : 종교현상학에 대한 현상학
1960년대 종교학이 부각됨에 따라 종교학 발전에 참여 했던 여러 학술적 작업들을 체계적으로 종합화하는 작업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일을 맡은 사람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 자크 바르덴부르그이다. 그는 종교학의 이론가들을 밝히고 방법론과 출발을 알아보고 그간의 연구 성과들을 수집하고 싶어 했다. 주인공은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할 점은 그가 말하는 결론이다. 그는 종교학 분야의 미래 가능성에 대해 평가를 하였다. 주인공은 서구가 세계로 뻗어나감에 따라 종교라는 기제를 통해‘공통적인 인류의 역사’를 실감하고 싶어 하면서, 종교전통들을 어떤 의미심장한 역사적, 발전적 질서 속에 나란히 놓으려고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서구가 동양의 종교전통들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잣대로 파악하면서 오류를 범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생각되어 진다.
종교학은 서구 세계의 절대화에 대한 경향을 견제하면서 종교가 변화에 과정 속에 있고 문화와 각 종교들 사이에서 관계들도 변하고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종교학에 대한 이 분야의 인물들을 살펴보는 것은 목표 성취를 위해서 기대되는 바이다. 그는 종교학의 성장이 종교의 본질과 기능을 통찰해낼 지속적인 기반을 마련한다는 인상 깊은 간증을 하고 있는 셈이다.
후설을 자세히 살펴보면 엘리아데가 보인다.
원뿔이 있다. 원뿔을 밑에서 보는 사람은 원뿔이 원으로 보일 것이고 측면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삼각형으로 보인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착각 때문이다. 외부의 대상은 언제나 본질의 일부만을 의식에게 보여 줄 뿐이다. 그러면 본질을 어떻게 완전하게 볼 것인가? 그것은 바로 원뿔을 바라보는 여러 시점의 종합화로서 가능해진다.
이게 어떻게 가능 할까? 후설은 지향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의식은 항상 무엇에 대한 의식이다. 즉 의식은 텅빈 상태이며 무언가와 관계를 맺으면서 완성된다. 그 관게를 맺는 방식이 지향성이다. 나와 너, 나는 오늘 화장실에 갔다. X+Y라는 두 항에서 후설은 (X+Y)라는 하나의 항으로 묶어 괄호속에 대해서는 판단중지를 외친다. 후설은 여기서 많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지만 외부 대상에 대한 본질 추구에 대한 한계점을 지적한다고 할 수 있겠다.
맥주광고, 1500년 경 유럽에서 각 현 악기들에 진통과정 속에서 탄생한 바이올린과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