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믿음의 진정한 가치 창세기 22장 1절에서 14절까지 2

 1  설교말씀 믿음의 진정한 가치 창세기 22장 1절에서 14절까지 2-1
 2  설교말씀 믿음의 진정한 가치 창세기 22장 1절에서 14절까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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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설교말씀 믿음의 진정한 가치 창세기 22장 1절에서 14절까지 2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오늘 이 시간도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또한 주님께 온전한 예배로 영광을 돌리시고자 이곳에 모이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의 임재하심과 넘치는 주님의 사랑이 우리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시길 간절히 사모하며, 지금까지도 신앙의 참된 믿음을 지켜나가시며 그 긴 여정가운데서 날마다 승리와 축복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에게 그 믿음의 온전함이 더욱 더 회복되시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Ⅱ. 본 론 (4페이지 설교내용)
Ⅱ-1. 성경속의 문제(“인생 최대의 어려움”)
몇년 전, 중국에서는 20억 마리가 넘는 쥐 떼가 출몰해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외신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폭우가 쏟아진 이후, 중국‘후난성’주변 여러 마을에 20억 마리에 달하는 쥐 떼의 습격을 받았는데 수천, 수만 마리씩 무리지어 다니면서 민가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주민의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또한, 중국‘쓰촨성’에서는 바퀴벌레 떼가 나타나 기승을 부렸는데, 한 공무원 기숙사에서 살충제로 죽은 바퀴벌레의 무게만 100Kg 이상이었다는 충격적인 보도이었습니다. 이것은 중국 대륙에 강한 집중호우와 높은 습도 때문에 생긴 것으로 전해졌는데, 중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곤충과 동물의 집단 출현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각종 개발로 자연이 파괴되면서 서식 환경이 바뀐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인공적인 자연의 변화, 그리고 환경의 오염 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 엄청난 위기와 어려움을 주고 있는데, 지금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촉각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자연의 공격만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들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이용하는 문명의 이기(利己)들, 질병과 사고, 전쟁과 테러, 종교들 간의 문제 등 우리의 삶과 생명을 위협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은 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과 일들이 다른 나라, 혹은 다른 민족들에게만 일어난다는, 단지 남의 일인 양 생각해서 나와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기에 단정할 수 없는 것은, 그러한 어려움과 위기 등이 우리의 시대와 현실에서도 지금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즉, 이제는 나와 내 가정,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그러한 어려움과 위기가 닥쳐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인생 최대의 어려움과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에도 늘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그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는 사건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는 아브라함이 그의 생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문제는 외부로부터 왔고,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도와주시고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이제까지 있었던 문제들은 더 이상의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당하는 문제는 너무 심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가 다름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20년을 기도하여 얻은 아들, 그것도 도무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늦은 나이에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신학교에 보내서 목회자로 드리라는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혹은, 부모 곁을 떠나 멀리 가서 살게 하는, 아니면 장성하여 군대나 전쟁터에 내 보내지는 그런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린 양을 하나님께 번제의 제사로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아들을 죽여서 바치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생명보다 귀한 아들을 어떻게 죽인다는 말입니까? 그 아들이 얼마나 귀한 아들인데, 어떻게 죽여서 바친다는 말입니까? 다른 일은 다 할 수 있어도 그것만은 못 할 노릇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다른 자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들 하나 있는데, 어떻게 그 아들을 바치라는 말입니까?
당시 자녀가 없다는 것은 삶의 끝을, 혹은 부족(附族)의 끝을 의미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약속 주시고, 25년의 세월이 지나서 주신 아들을 잡아 바치라는 것은,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노력 해봐도 상식적으로도 이치에 맞지는 않습니다. 이삭을 통해서 자손이 번창케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파기될 직전입니다. 믿음으로 살아 온 아브라함에게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인생 최대의 어려움이었을 것입니다.
Ⅱ-2. 세상 속의 문제(“가치를 잃어버린 믿음”)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어려운 삶의 순간에도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믿음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결론이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을 알고 하는 척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말씀을 보면 그냥 하는 척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른 아침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향하게 됩니다. 부성애도 강하지만 일반적으로 모성애는 더 강한 법입니다. 만약 사라가 아들을 바치러 간다는 사실을 안다면, 일은 다 그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일어난 사건이‘이른 새벽’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사라가 알면 도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아, 도망 나오듯이 집을 나서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말입니다.
모리아 산에 다 왔을 때, 아브라함은 하인들을 산에 올라오지 못하게 합니다. 힘이 좋아 이삭을 묶었다 하더라도 하인들이 양손을 잡아버리면 아들을 바치고 싶어도 바칠 수 없기 때문에 방해가 될 수 있는 것들은 미리 다 제거하고 올라가는 모습을 묘사한 말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아들을 앞세우며 올라갈 때 어느 아버지의 눈에서 피눈물이 쏟아지지 않았겠습니까? 아들이 낌새라도 채고 도망 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여느 아버지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생각 아닙니까? 멀리 도망 가 버리면 바치고 싶어도 못 바치는 것이기에 차라리 이삭이 눈치를 채고 멀리멀리 도망이라도 가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중간에 이상하게 여긴 아들 이삭이 물었습니다.“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러 가는데 왜 제물이 없습니까?”아브라함은 행여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게 될까 싶어서 피눈물을 속으로 감추면서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마음을 굳게 먹고 출발했지만, 사흘 길을 걸어 갈 때 별생각이 다 들지 않았겠습니까? 남의 이야기이니까 쉽지 100살에 얻은 자식 앞세우며 걸어가는 길이 어떠했겠습니까?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키에르 케고르’는 그의 책,「그리스도교의 훈련」(the practice of christianity)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3일 동안 걸어가면서 아브라함은 먼저 자신이 먼저 죽임을 당하는 시간이었고, 자신을 십자가에 먼저 못 박아야 했던 걸음이었다.”그렇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한 다음에야 갈 수 있었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산, 모리아로 가는 길은 고통의 길이었습니다. 아픔의 길이었습니다. 한숨의 길이요, 눈물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러 가는 길이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지만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모리아 산으로 가는 길은 하나님이 그의 삶 속에서 온전히 살아나시는 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너무 너무 귀했을 것입니다. 차라리 하나님께서“너 자신을 바쳐라”하셨다면 아마도 그 일은 쉬웠을 것입니다. 네 가진 재산을 바쳐라 했다면 그것은 더울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은 너무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아들은 생명보다 더욱 귀했을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더 귀했을 것입니다.
현대 경영학에서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습니까? 혹자의 말을 빌자면 즉,‘가치의 시스템(value system)’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확신의 시스템(believing system)’이 결정되고, 거기에 따라서‘행동의 시스템(behavior system)’이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무엇입니까? 어떤 고백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예배, 헌신, 봉사가 달라질 것입니다. 아들도 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귀했습니다. 이런 고백이 정확한 사람만이 바로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올바로 된 믿음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고백이 확실한 사람이었습니다.“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이 이해할 수 없는 명령조차도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을 것이다.”그는 그렇게 믿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