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조선시대의 궁중 식생활과 조선시대 문화적 식생활, 그리고 세종시대, 세종에 대한 설렁탕의 유래, 앵두에 대한 짧은 일화들도 다루어 조금은 광범위하고 다양한 분야의 주제가 다루어 졌다.
그리고 이어서 궁중 식생활에 따른 세종대왕의 식사에 대한 영양학적 문제점을 제시해보았다.
◎본론
1. 궁중 왕족들의 일상적인 식생활은 어땠을까?
☞드라마 대장금의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다. 그 비결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 한 가지는 매회 등장하는 새롭고도 진귀한 궁중음식이다. 궁중 수라간 나인(內人)들이 선보이는 궁중음식은 재미를 더하기 위해 꾸민 부분도 있긴 하지만 대개는 문헌과 고증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라 음식을 실제로 만드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현장감이 생생하다. 드라마 대장금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궁중 식생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궁중음식에 대한 문헌이나 기록은 조선시대 전기까지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궁중음식은 단군 이래 조선왕조까지 왕권국가가 이어졌던 4000년 역사와 그 세월을 같이한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의 사대부가에서 궁중과의 빈번한 교류를 통해 궁중음식과 유사한 음식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궁중에서는 국가적 행사나 외국 사신의 방문, 왕족의 탄일 및 가례 때마다 큰 잔치를 벌였기 때문에 연회음식이 유난히 발달했다. 궁중 잔치나 의례 때 차리는 고임상차림과 예법들은 민가에 전해져 혼례나 회갑 등 민가의 잔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①하루 다섯 끼의 식사
-왕의 식사는 하루 다섯 번
☞아무리 왕족이라 해도 매일 먹는 식사가 백성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임금의 진지는‘수라’라 했는데, 이는 몽골의 부마국(駙馬國·사위의 나라)이었던 고려 말기 몽골어에서 전해진 말이라고 한다. 궁중의 일상식에 대한 문헌 자료는 연회식 자료보다 훨씬 부족한 형편이라 실제로 어떤 임금이 무엇을 들었는지는 거의 알 수 없다. 궁중의 일상식을 전해주는 문헌으로는 유일하게‘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가 전해진다. 이는 정조 19년(1795)에 모후인 혜경궁 홍씨의 갑년(甲年·회갑)을 맞아 화성(華城)의 현융원(顯隆園)에 행차하여 잔치를 베푼 기록이다.
이 의궤 찬품조에는 왕과 자궁(慈宮)과 여형제들이 한성 경복궁을 출발하여 화성에 가서 진찬(進饌)을 베풀고 다시 환궁하는 8일 동안 왕족들에게 올린 음식과 공궤(供饋), 진찬, 양로연 등 잔치에 쓰인 음식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행행(行幸)하는 도중에 이동식 소주방에서 마련한 반수라상, 죽수라상, 응이상, 고임상, 그리고 다과상에 해당하는 다소반과(茶小盤果)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는 아주 귀중한 자료다.‘영조실록’은‘대궐에서 왕족의 식사는 고래로 하루 다섯 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른 아침의 초조반(初早飯)과 아침저녁 때의 두 차례에 걸친 수라상, 점심때의 낮것상, 그리고 야참(夜食)까지 총 다섯 번의 식사를 말한다. 이른 아침 초조반으로는 미음, 응이, 죽 등을 가볍게 먹었고, 아침수라(朝水剌)는 오전 10시경, 저녁수라는 5시경에 들었다. 낮것상에는 간단한 장국상이나 다과상을 올렸고, 야참으로는 면, 약식, 식혜 또는 우유죽 등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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