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01
성장 과정
02
청년 김구의
항일운동
03
애국 계몽
운동
04
중국에서의
항일운동
05
환국과
서거
06
백범 김구의활동 특징
01
김 창 암
백범 김구의 어린 시절
01
Ep1. 얼굴보다
마음 좋은
사람
출생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07.11~1949.06.26)
1876년 황해도에서 출생.
부친 김순영과 모친 곽낙원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남.
어릴 때 이름은 김 창 암, 집안은 상놈의 집안으로 가난하였음.
출생할 즈음의
시대적 배경
02
03
Ep2. 동학에 입도
김구는 1876년 황해도 해주 백운방 텃골에서 부친 김순영과 모친 곽낙원 사이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이름은 김창암으로 집안은 가난한 상놈의 집안이었습니다. 원래는 본관 안동 김씨로 양반의 신분의 세도가였으나 백범 직계선대가 조선 후기 김자점의 난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 황해도 해주로 도망가 농부로 생활하며 여러대를 거쳐 신분이 낮아진 것입니다,
그가 출생한던 즈음은 조선이 크게 기울고 있었습니다. 태어나던 해 일본군함은 무력시위를 벌이고 일본과 조약체결을 반대하는 사람은 유배를 당하는 등 최초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조건의 강화도조약이 반 강제로 체결된 시기였습니다.
그는 어릴적 과거급제로 진사가 되어 양반들의 모욕과 천대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5년동안 학문을 익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과거장에서 매관매직으로 타락한 분위기를 알게되며 실망을 하였습니다. 이 후 그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관상을 공부하였는데 본인의 관상이 좋지 않다는 것에 비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 관상서에서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는 부분을 보고 김창암은 벼슬을 통해 천한 신분을 벗어나고자 했던 자신의 욕망은 헛된 망상일 뿐, 마음 좋은 사람이 취할 바가 아니다라고 정의하고 얼굴 좋은 사람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하게 됩니다,
이후 1893년 김창암은 차별대우 철폐, 나라의 운수가 다해 장래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 라는 동학의 취지에 이끌려 만민 평등을 기본사상으로 하는 동학에 입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학을 입도하며 김창암이라는 이름을 김창수로 개명하게 됩니다, 그는 동학교도가 된 후 열심히 동학교리를 공부하고 활발한 포교활동으로 많은 사람들을 동학에 집도시켜 ‘애접기주’라는 별명을 갖게됩니다, 1894년 충청남도 보은에서 교주 최시형을 만나 팔봉접주에 임명됩니다. 그해 9월 황해도에서 동학농민 운동이 일자 선봉장으로 해주성을 공격하지만 실패하고 구월산 패엽사로 후퇴하게 됩니다. 이후 엄격한 군율을 적용해 군사훈련을 실시합니다. 하지만 동학군 이동엽의 공격으로 대패해 피신을 하며 1895년 그가 20살 때 안중근의 부친인 안태훈의 호의를 받아 부모를 모시고 청계동에서 살게됩니다. 이때 김구의 일생에 사상적 영향을 끼친 고능선이라는 학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게 가르침을 받다가 그의 권유로 청나라에 가게된다.
청년 김구의 항일운동 : 동학과 의병활동
02
김 창 수
애 기 접 주 /
팔 봉 접 주
황해도
동학농민 운동
스승 고능선을 만남
이동엽 동학군
으로부터 위협
“사람의 처세는 마땅히 의리에 근본을 두고”
“일을 할 때에는 판단, 실행, 계속 단계로 성취하여야 하며”
“아무리 명확히 보고 잘 판단하였더라도 실행할 결단력이 없으면 모두가 쓸데 없다”
“사내라면 모름지기 기개를 갖고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동학농민운동과 의병활동
스치다 사건
애국계몽운동(교육)
신민회 참여
감옥과 이름을 김구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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