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테니스 유래
한국에 테니스가 소개된 것은 1908년 무렵 일본인들에 의해서 였지만, 이때의 테니스는 경식이 아닌 연식이었다. 경식 정구인 테니스는 미국인 선교사 뱅커와 제중원의 약사 앤더슨에 의해 도입 되었으며, 한국인에 의해서 시작된 것은 1926년 경성제국대학 정구부장 이었던 강성태가 연식 정구부를 테니스부로 전환 시키면서였다. 그러나 공이나 라켓 등 용구가 없어 발전하지 못했고, 8.15광복 후 한국에 들어온 미군들의 영향으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해 1946년 7월에는 제1회 전국경식정구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1970년 이후 테니스 붐과 용구의 국산화로 테니스 인구의 급증과 기술의 향상으로 점점 세계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테니스 경기 룰
1)코트
테니스 코트는 일정한 재질로 이루어진 사각의 평평한 땅이다. 코트의 길이는 23.77m이며, 너비는 단식의 경우 8.23m, 복식의 경우 10.97m이다.[24] 코트 주변에는 선수가 뛰어 다닐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어야 한다. 네트는 코트를 이등분하는 위치에 베이스라인과 평행하게, 코트 너비보다 약간 더 길게 세워진다. 네트 높이는 네트 포스트(기둥) 부분이 1.07m이며 가운데 부분이 91.4cm이다. 초의 테니스 코트는 1873년 월터 윙필드 장군이 고안했던 스티케 테니스(스페어리스티크)의 코트 규격을 본따 만들어졌다. 이 코트 규격은 1875년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수정되었는데, 이것은 라인 구조는 윙필드 장군의 것과 유사했지만 코트의 형태가 모래시계 모양이 아닌 직사각형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2)라인
코트의 양쪽 끝에 네트와 평행하게 그려져 있는 라인을 베이스라인(baseline)이라하며, 네트와 베이스라인 사이에 역시 네트와 평행하게 그려져 있는 라인을 서비스 라인(service line)이라 한다. 양쪽 베이스라인의 중앙에는 정중앙을 표시하는 센터 마크가 있다. 코트의 양 바깥쪽에서 한쪽 베이스라인에서 다른 한쪽 베이스라인까지 그려진 선을 복식 사이드라인이라 하며, 이것은 복식 경기에서 사용되는 코트를 표시하는 것이다. 복식 사이드라인 안쪽에 평행하게 그려져 있는 두 선을 단식 사이드라인이라 하며, 이것은 단식 경기에서 사용되는 코트를 나타낸다. 복식 사이드라인과 단식 사이드라인 사이의 길고 좁은 공간을 복식 앨리(alley)라 부른다. 서비스라인은 이 라인과 네트 사이의 공간에 서브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며, 서브하는 선수가 서는 위치는 아니다. 한쪽 서비스라인의 중앙에서 다른 한쪽 서비스라인의 중앙으로 네트를 가로질러 그어진 선을 센터 라인이라 한다. 서비스 라인과 센터 라인이 만드는 닫힌 직사각형 공간을 서비스 박스라 하며, 서버는 서브를 이 공간 안에 넣어야 한다. 공이 첫 바운드 시에 라인 안쪽 공간이나 라인의 일부분에 닿지 않을 경우 아웃이라고 한다. 모든 라인의 너비는 51mm(1.2인치)가 되어야 하며, 베이스라인은 필요에 따라 그 너비를 100mm(4인치)까지 늘릴 수 있다.
테니스 기술
1.포핸드 스트로크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