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예술 명대 문인화 의흥 성
명대 동기창(1555~1636)을 중심으로 진계유, 막식룡 등의 사대부 화가들은 원대와 명대에 꾸준한 진보를 보인 문인화 이론에 한층 더 당위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들 송강파 화가의 중심인물은 동기창(명대의 가장 전형적인 사대부 화가로서 예부상서를 포함한 많은 관직을 역임했으며 원대의 조맹부, 그리고 16세기의 문징명, 축윤명 등의 중국 역대 명필과 맞서는 탁월한 서예가였고 문장가. 서화감식가였음)이었으며, 그가 내세운 남.북종화 이론은 그 이후 중국회화사상 돌이킬 수 없는 문인화 우월사상을 심어 놓았다.
동기창에 의해 북종화를 업신여기고 남종화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생겨났고, 그 결과 북종화로 분류되었던 직업화가들까지 남종화의 필치를 모방함으로써 북종화와 남종화 사이의 양식적인 차이는 사라지게 되었다. 직업화가들이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대로 그리지 못하고 대부분 주문자의 요구에 맞추어야 했다면, 문인화가들은 그러한 현실적제약으로부터 여러모로 자유스러웠었다. 문인들은 대상의 외형(外形)을 충실히 묘사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자유분방한 필치로 마음껏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그림의 수준이 낮지는 않았는데, 이 당시의 대표적인 문인화(文人畵)들은 예술적으로 뒤지지 않는 훌륭한 작품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인화란 무엇인가.
문인화란 직업적인 화가가 아닌 문인이나 사대부(士大夫)들이 그린 그림을 말한다.
문인화는 종종 남종화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문인 화가뿐 아니라 직업 화가도 남종화의 화법을 받아들여 그리는 경우도 있어서 문인화가 곧 남종화라고 볼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직업 화가의 그림일지라도 사군자와 같은 문인 취향의 그림을 말할 때나, 작가의 내면 세계를 표출한 품격 높은 그림을 가리킬 때 양식어(樣式語)로 쓰이기도 한다.
이른바 문인화의 기본적인 특징 중 가장 뚜렷한 것은, 문학적 취향이 지나칠 정도로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겉모습을 묘사한다던가 사실은 매우 부차적인 위치로 전락하였고, 그 대신 적극적으로 강조된 것은 주관적 취향과 정서였다.
원래는 인간의 정신적 면모, 즉 인물화의 표준이 되었던 것이 이제부터는 오히려 주관적 취향이 반영된 산수화의 준칙이 되어버렸다. 이에 따라 문인화가들은 더 이상 인물화를 그리지 않게 되었다.
원사대가의 화가들에게는 아직 形似의 성격이 본질적으로는 남아있었으며, 자연경관의 묘사도 본질적으로는 충실한 재현에 있다고 해야 한다. 형사에 대한 경멸적 언사에는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명청대에 이르게 되면 形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타격을 받고, 주관적 취향과 감흥 정서가 모든 것을 압도하게 된다. 또한 예술가의 개성 특징 또한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문인화는 중국과 한국에서 함께 발달하였으나 기본적인 이론이나 화법이 거의 다 중국에서 이루어졌으며 한국과 일본은 그 내용을 단지 전해 받은 것이다. 글자 그대로 문인들이 그린그림이 문인화이기는 하나 오랜 세월에 걸쳐 계속 그려졌기 때문에 내용상 큰 변화가 있어 왔다. 즉 초기에는 문인들이 文氣를 드려내며 특이한 화법을 보여주었으나 점차 형식화되고 양식화되어 후대에는 하나의 화법이나 화풍이 되어 직업화가나 화원화가들도 쉽게 모방하게끔 되었다. 이런 경우는 우리가 문인화풍으로 그렸다 하여 양식적으로 구분해 보기도 한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