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전공에서 바라본 세종시대와 정치에 대한 이해 평민 스포츠 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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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자신의 전공에서 바라본 세종시대와 정치에 대한 이해 평민 스포츠 씨름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세종의 시대는 의심할 필요 없이 조선의 최고 전성기시대 중의 한 부분 이다. 훈민정음등 수많은 발명품들이 탄생했으며 수많은 인재들이 등용되어 그들의 진가를 발휘하였다. 4군 6진을 비롯하여 국방, 외교적으로도 훌륭한 성과가 많았으며 왕권 또한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이 모든 것의 뒤에는 세종의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위와 같이 훌륭한 시대를 굳이 나의 전공과 관련하여 바라보자면 체육활동이나 그와 연관되어진 일체의 활동들이 큰 두각을 보이지 못한 점이 아쉬울 뿐이다.
세종의 시대를 포함하여 1800년대 후반까지 군사훈련의 목적이 아니 신체활동은 간단한 놀이와 무용등이 전부였다. 일부 사대부들이 즐기던 마상격구등은 체육활동으로 볼 수 있겠으나 한정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즐기던 활동이라 크게 확대 해석하기에는 오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전통 종목인 씨름은 더욱 부각되어야 하며 깊이 있는 연구가 병행 되어야 한다. 씨름은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인류의 시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생존이 경쟁이었던 삶은 서로간의 투쟁이라는 모습으로 표출되기도 했는데 그때부터 서로 맞잡고 힘을 겨루던 것이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정확한 경기의 규칙을 가지고 등장한 것은 고구려시대이다.
세종의 시대에도 일반 서민들은 씨름을 즐겼을 것이다. 우리가 자주 볼 수 있는 김홍도의 민화에 나오는 씨름하는 장면은 그 이미 정조의 시대로 그 후대의 것이지만 세종시대에도 장터나 명절때 큰 씨름대회가 평민들을 중심으로 열렸을 것이다. 지금과 다르다면 씨름이라는 것을 전문적인 운동 종목으로 여기지 않았을 테고 그러므로 전문적인 선수가 아닌 힘 꽤나 쓰는 마을 장정들의 힘겨루기 시합장 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씨름을 스포츠의 가장 큰 기능이자 역할인 오락성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그때의 인기 이유와 지금 여러 격투기 이벤트에 열광하는 이유를 같은 맥락이라고 판단한다. 자극적인 승부와 그것에서 오는 희열감, 대리만족등은 현재 스포츠에 열광하는 대중들의 기호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더군다나 종목의 성격상 마쵸적인면을 많은 부분 포함하고 있는 씨름은 남성상위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남성에게는 우월감을 증폭시켜줄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씨름대회의 상품인 황소 한 마리는 농업이 주생업이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이해해볼때 엄청난 동기부여의 힘을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국가에서도 가장 장려하는 산업이 농업이었기에 모든 사람들은 농업을 중히 여겼을 것이고 그 농업에 큰 일꾼인 황소역시 무척이나 중요한 존재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씨름이 당시의 시대상과 정치상에 있어서는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이지만 민초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소소한 즐거움 이었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뜻에서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고 현재, 씨름계의 퇴보가 더욱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