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아 있는 역사 춤추는 노예들
흑인과 한국인은 공통점이 있다. 두 민족은 식민지 역사의 생존자이다. 사실 흑인은 민족이 아니라 인종이지만 비록 흑인들의 고향이 다르다 할지라도 수 세기 동안 미국의 노예 역사와 인종 차별의 역사를 공유한 것을 고려하면 하나의 민족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백인의 억압 속에서 수백 년 동안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쳤던 흑인의 삶은 침략으로 침체된 역사 속에서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한국인과 사뭇 유사한 것 같다. 노예제도 아래에서는 백인들은 흑인을 동물로 취급했고 흑인을 죽이거나 강간하거나 하는 등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 법적으로 정죄하지도 않았고 그들 스스로도 죄책감을 시인하지 않았다. 노예제도가 종식되었을 때 흑인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화되었다. 노예제도 아래서는 백인이 흑인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간주했기 때문에, 미약하지만 그래도 소유물을 지키는 의미에서 노예의 생사에 관심을 갖기도 하였다. 마치 농군이 소의 건강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노예제도의 종식은 이런 보호막조차도 없애버렸다. 교육도 받지 못했고, 돈도 없고, 주거지도 없는 상태에서 노예 해방은 결국 또 다른 노예 제도를 형성시키게 되는데, 바로 경제권에 의한 종속적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흑인들은 여전히 두려움과 걱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생존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 기본적인 인권과 시민권을 회복을 위한 싸움, 인종차별의 핍박과 고통 속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 인내와 투혼 등, 다양한 형태의 힘과 열정은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와 흑인들이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강한 공동체 의식이다. 흑인들도 한국인처럼 “우리” 또는 “함께”라는 것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사회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위해 위로해야만 했고, 서로를 위해 도와야 했으며, 때로는 옆집 자식의 엄마로, 앞집 자식의 할머니로 살아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서로 간에 강한 유대의식이 발전하게 되었고, 상호의존적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셋째는 웃어른에 대한 공경심이다. 요즘 힙합문화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통해 상스러움을 노래하는 흑인 가수를 많이 보게 되는 데, 그것으로 흑인 사회의 전통적 가치를 평가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전통적인 흑인 공동체에서는 웃어른에 대한 예의를 깍듯이 차린다. 이웃 어른은 보통 아저씨, 아줌마라고 호칭하기도 한다. 한국의 여느 가정처럼 아버지의 권위가 높은 편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의 방식은 흑인을 무시하는 백인 중심의 사회 속에서 흑인들 스스로가 개인의 권위를 인정하려는 분위기에서 기인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한다.
이런 역사와 문화가 미국흑인문학에 고스란히 묘사되었다.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 기본적인 인권과 시민권을 회복을 위한 싸움, 인종차별의 핍박과 고통 속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 인내와 투혼 등, 다양한 형태의 힘과 열정이 그들의 문학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우리의 저항문학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 두 문학의 동질감을 맛볼 수 있었다.
계절 학기를 마쳤을 때 나는 이미 미국흑인문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리고 만약에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면, 꼭 흑인문학을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출처] 미국흑인문학 수업 (Dr. Jai Park) |작성자 Dr Park
저는 인도에 첨 갔을 때 시커먼 얼굴에 빛나는 눈빛들이 모두 제 짐을 가져갈 것 같았거든요.그러나 사실은 대부분 사람들이 선하고 에펠탑에서 도난당하는 횟수보다 적다는 걸 알았어요. 역시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참 잘못 된 것이죠.우리는 그런 실수를 늘 하고 살고요.특히나, 한국은 다문화사회가 아니니까요. 저는 제 딸아이가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요...바로 이렇게요. 흑인문학을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참 중요하쟎아요.
[출처] 미국흑인문학 수업 (Dr. Jai Park) |작성자 Dr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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