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화 이 키가 미를 게임으로 전환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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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만 화 이 키가 미를 게임으로 전환 스토리텔링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일본만화인 ‘이키가미’는 죽음을 배달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정부에서 발행하는 죽음통지서(이키가미)를 배달하는 일을 하는 공무원인데, 이 죽음통지서는 신분이나 나이, 학벌 등 우리가 현실에서 성공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들을 배제하고 무작위로 통지된다. 높은 자살률 속에서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치열한 삶을 살게 만들려는 정부의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겪고 있는 현대 사회의 문제와도 충분히 맞물릴 수 있다. 자살사이트가 만연하고, 하루에도 수많은 젊은 생명들이 꺼져가는 오늘날의 현실. 어린아이들조차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지 못하고 가상현실에 물들어 동생을 찔러 죽이고는, 동생이 죽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형의 모습이 존재하는 사회이다. 그리고 구직난에 허덕이며 젊음을 소비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더 이상 젊음에게서 꿈을 찾아 볼 수 없는 현실. 만화의 세계와 동일한 문제의식을 일깨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왜 그 매체를 선택했는가?
처음에는 영화로 할까, 아니면 소설로 할까를 고민했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 이미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화가 되었고, 소설로 쓰기에는 만화처럼 단순히 문제의식의 제기에서 끝나버릴 것 같았다. 게임이라면 문제의식을 제기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쉽게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적합한 코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단순히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에 효율적인 매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환 스토리텔링을 통해 ‘이키가미’에서 내가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것은 ‘당신에게 만약 하루의 시간만이 허락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와 ‘당신은 지금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이야기를 전달할 매체는 이러한 질문들을 던질 수 있어야 하나, 그 질문에 대한 답마저 제공하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 질문들에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기려면, 만화나 영화, 소설처럼 인물을 내세워 모든 것을 보여주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사고할 수 있게 하고, 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게임의 방식이라면, 최적의 매체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캐릭터(등장인물)
주요 등장인물은 이키가미를 배달하는 후지모토 켄고, 길거리에서 가수를 꿈꾸던 타나베 츠바사와 모리오 히데카즈. 이즈카 사토시와 이즈카 사쿠라 남매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상처나 과거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더욱 슬픈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평범한 사람이 아닌, 뭔가 사연이 있는 이들이기에 이키가미를 받았을 때의 그 슬픔과 절망을 잘 표현해낼 수 있다. 만화나 영화는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에서 출발하여 각각의 인물들이 이키가미를 받았을 때 느끼는 절망감과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아름답게 마무리하는가를 통해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독자나 관객의 선택의 여지는 배제되어 있다. 이것은 만화나 영화가 독자나 관객에게 단지 보여주는 것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인물의 삶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여러 명의 인물의 삶을 보여주어, 24시간 후에 죽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납득시키고, 보아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이런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내지 않느냐? 라는 설득의 말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이라는 매체에서는 이렇게 많은 인물이나, 사연들이 등장할 필요는 없다. 한 인물의 삶이라도 어차피 공통적인 요소를 뽑을 수 있는 인물들의 삶을 그려냈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 하는 사람이 공감할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 더군다나 게임에서는 직접 그 인물의 삶속에 들어가 삶을 살 것이기 때문에 여러 명의 번잡한 이야기는 오히려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지루하게 만들 뿐이다. 게임화 할 때 살릴 캐릭터를 두고 많은 생각이 있었는데, 결국 주인공인 배달원 후지모토 켄고와 한 챕터의 이야기만을 살리기로 했다. 바로 타나베 츠바사와 모리오 히데카즈의 이야기이다. 이즈카 사토시와 이즈카 사쿠라 남매의 이야기는 가슴 절절한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오빠의 일방적인 희생으로만 끝나버리는 진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타나베 츠바사와, 모리오 히데카즈의 이야기는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결국 한명은 극적으로 꿈을 이뤄내었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그 상황적 아름다움이 게임을 플레이 할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흡입력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토리라인&구성
세계는 평화롭다. 풍족한 물자와 쉴 세 없이 성장하는 과학기술, 윤택한 생활 속에서 과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행복한 삶의 퍼레이드. 그 중심에는 국가가 있다. 한 곳에 소속된다는 소속감. 그리고 의무를 다하면 굳건한 방패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국가이다. 그런 국가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목숨에 대한 규제라면? 이야기는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국가에 소속된 이들이라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주사를 맞아야 한다. 특수한 약물이 들어있는 이 주사는 평소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어느 순간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게 만들어져있다. 그리고 이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국가뿐이다. 인구 1000명당 한명은 18세에서 24세 사이에 화학반응으로 인해 죽게 된다. 그리고 이 사실은 24시간 전 죽음을 당하게 될 사람에게 전달된다. 1분, 1초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주인공은 졸업을 앞둔 평범한 대학생이다. 과거에 비해 훨씬 윤택한 생활이라지만, 남들과 같은 질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직업을 얻어야 한다. 토익, 토플.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오늘도 같은 문제집을 펼쳐놓고 획일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 자신이 1000명중 한명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저 이 좁고 깊은 취업의 터널을 넘어, 타인에게 보란 듯이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원할 뿐이다. 그런 주인공에게 어느 날 ‘이키가미’가 배달된다. “당신은 24시간 후에 죽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주어진 24시간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게임의 도입부에서는 타나베 츠바사와 모리오 히데카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해왔던 타나베와 모리오. 그러나 기획사에 선택된 것은 타나베 뿐이었다. 모리오는 절망한다. 모리오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룬 타나베. 그러나 막상 데뷔를 앞둔 타나베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지 못하고 기획사의 요구에만 끌려 다닐 뿐이다. 그들에게 사회의 벽은 높았다. 그러던 중 타나베에게 데뷔 하루 전 ‘이키가미’가 배달된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몸을 떨던 타나베는 결국 데뷔무대에서 모리오와 함께 불렀던 자신들만의 색깔이 담긴 음악을 연주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같이 노래를 불러주는 모리오의 눈물과 함께 그 생을 마감한다. 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굳이 이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이키가미’에 순응하는 다른 죽음들과는 달리 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타지카와 나오키가 보여준 정부가 선언하는 죽음 자체에 저항하기 위해, 예정시각보다 빨리 죽는 모습도 충분히 저항적인 것이지만, 이것은 너무 단순하고 폭력적인 저항이다. 나오키의 행동만으로는 삶의 소중함을 표현해 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나베와 모리오의 이야기가 다른 죽음들과는 달리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는 점 또한 내가 이들의 이야기를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이제 다시 주인공의 이야기로 돌아와 주인공은 죽음을 앞둔 24시간을 보내야 한다. 독서실의 옆자리에서는 아직도 볼펜소리들이 쉴 세 없이 들려온다. 주인공은 이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부모님을 만나러 갈 수도 있고,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다. 혹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할 수도 있고,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을 자리를 찾으러 다닐 수도 있다. 주인공의 행동은 자유롭지만,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명제를 벗어날 수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내가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겠지만, 막상 닥친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주인공은 방황 할 수밖에 없다. 대체 그가 그동안 해 왔던 공부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주인공이 처음부터 이런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도 어린 시절 꿈꾸었던 꿈들이 있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현실이라는 것을 체감하며, 그 꿈이 작아지고, 현실적인 것이 되었을 뿐이다. 이제 와서 깨달아봤자 24시간은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게임의 화면에는 주인공의 삶의 남은 시간이 표시되어있다. 24시간부터 시작해서 점점 줄어드는 이 시간은 게임을 플레이 하는 사람의 긴장감과 절망감을 높여줄 것이다. 게임은 큰 흐름만 있을 뿐, 멀티 엔딩을 지향한다. 부모님을 만나러 갈 수도 있고, 혹은 아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죽을 수도 있다. 확정된 것은 죽는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주인공이 이동할 때마다 이동거리에 따라 24시간에서 시간이 줄어든다. 이동하지 않고 한 장소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행동에 따른 시간이 줄어든다. 은행을 턴다든가 하는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고, 예정시각보다 빠른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모두 도입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이제 플레이를 하는 사람은 죽음을 앞둔, 주인공의 24시간을 살아야 한다.
원작이나 영화와는 다르게 주인공을 배달원이 아닌, 죽음을 통지받는 사람으로 설정한 것은, 죽음에 대한 고뇌보다는, 삶에 대한 집착을 불러일으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후지모토 켄고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키가미를 배달하며,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라는 고민을 수도 없이 반복한다. 그러나 이것은 죽음에 직면한 사람의 시선이 아닌,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이의 시선이다. 사람은 직접 격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죽음을 직면하지 않은 사람이 내뱉는 죽음에 대한 고찰은 단지 피상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절박한 국면조성을 통한 죽음을 앞둔 삶의 대리 체험이라면, 이런 약점을 어느 정도는 커버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주인공은 죽음을 맞을 것이다. 가족들은 슬퍼할 것이고, 친구들 또한 그를 쉽게 떠나보내지 못할 것이다. 혹은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처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