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동아일보》신춘문예 현상모집 시조부문에 으로 가작입선, 문단에 데뷔를 하였으며, 1940년 7월《문장》(2권 6호)에 으로 첫회의 추천을 받았다. 선자인 가람은 ‘범상한 제재를 가지고 이와 같은 좋은 작품을 지은 그의 천품과 조예가 어떠함을 능히 짐작하겠으며, 우리 시단의 한 장래를 그에게 허여 않을 수 없다’고 호평하였다.
광복 후 《대구일보》편집과 경영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952년 대구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지냈으며 1946년 동인으로 참여했다. 1949년 남로당 도간부로 모함을 받아 사형 언도를 받았다가 풀려나기도 한다.
1955년 《이호우시조집》을 간행, 제1회 경북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1956년에는 대구 《매일신문》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편으로는 시작활동을 하여 지방문화 창달에 공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 후 누이동생 이영도와 함께 발간한 오누이 시조집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중의 1권인 《휴화산》을 발간했다. 1968년 를 발족, 시조 창작 보급과 후진 양성에 힘쓰며, [낙강(落江)] 동인지를 발간했다. 한때 시조단의 잡초들을 공박하는 논문 ‘잡초제거론’을 발표, 시조시인들의 자체반성을 촉구하여 침체했던 시조단에 경종을 울렸다. 그는 종래의 시조에서 탈피, 제한된 시조형식을 고수하면서 거기에 현대적인 감각과 정서를 담는 데 성공한 시조시인으로 평가된다.
1970년 1월 6일, 아들 혼담을 위한 선을 보고 흐뭇한 기분으로 귀가하는 노상에서 심장 마비로 졸도, 병원으로 옮겼으나 깨어나지 못하고 영면(永眠)하였다. 1972년 대구 남산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작품】*(1940) *(1955) *(1955)
【시조집】(1955.경북문화상)(1968) (1968.오누이 시조집)
【저서】
2. 시적 경향
1920년대의 감각과 동양적 허무를 주조로 하는 시조혁신기를 이어받아 1930년대 후반에 와서 생명의 의지를 주사상으로 하여 시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종래의 감정 투입이나 퇴폐적 감상을 배격하고, 자연이나 예술지상주의의 베일에 숨으려 들지 않았던 그는 정신적 가열성의 차원에까지 도달하면서도 시조 본령인 장(章)과 구(句)를 다치지 않았다. 그 작품 속에는 계절적 변화를 통한 한국의 고유 미학이나 생활 감각을 형상화하려 하지 않았고, 명승지나 역사적 고적을 소재로 택함으로써 민족정서를 인유적(引喩的)으로 도입한 흔적이 없다. 종래의 시조작가들이 회고투나 영탄적인 작품을 생산함으로써 시조문학이 넘지 못하던 고비를 개척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한 마디로 한국의 고전적 시조를 현대 감각이나 생활 정서로 전환시켜 독특한 시적 경지를 개척한 것이 시조 시단에 남긴 공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시조는 우리나라 현대 시조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으며, 아울러 많은 젊은 시조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1) 내용적 측면
우은숙(2003), 현대시조의 공간구조와 현실인식 연구:조운과 이호우를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조두섭(1999), 이호우 시조의 서정성 비동일화의 역동성, 人文藝術論叢(p47-67), 대구대학교
최승호(1996), 이호우 시조에 나타난 생명의 미학, 대구어문론총(p555-580), 대구어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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