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자주정신
세종대왕은 남다른 애민정신과 자주정신을 바탕으로 언어 정책을 추진하였다. 훈민정음의 서문을 통해 세종의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말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하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도 그 뜻을 표현해 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므로 내가 이를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드니 온 백성이 쉽게 익혀서 언어 문자생활을 편하게 함에 있다’(나랏 말미 중국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디 아니 이런 젼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 홇 배 이셔도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 내 이를 윙야 어엿비 녀겨 새로 스믈 여듧 노나 사마다 수 니겨 날로 메 뻔한킈 하고져 미니라.) 라고 하였다.
또한 주체 자주정신이 세종의 정치철학 밑면에 깔려 있는데 위의 훈민정음 서문을 통해 그것 역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말이 중국말과 다르다는 것, 그러므로 중국 글자인 한자로는 우리말을 적을 수 없음을 먼저 내세우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당시 대개의 유학자들은 성리학을 삶의 지표로 삼고, 동시에 대국인 중국을 섬기는 것을 당연시 했다. 최만리의 정음 반대 상소문에서 그 의식을 확인할 수가 있는데 상소문을 요약하면, 첫째로 새 문자를 만들어 단독으로 쓴다는 말이 중국에 흘러 들어가면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고, 둘째로 중화의 문자인 한자를 대신하여 훈민정음을 쓰면 스스로 오랑캐가 된다고 하였다. 셋째로 설총의 이두로써 가능한 일을 굳이 훈민정음으로 대체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고 마지막으로 창제 취지 중 하나로 훈민정음 보급이 억울한 사람을 줄일 수는 있다는 논리가 옳지 않다는 것을 말했다. 즉, 이 내용의 골지는 ‘사대’와 ‘권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대모화의 대세속에서 중국말이 우리말과 다르다는 것을 첫 마디에 내세웠다는 것은 그만큼 세종의 민족 자주 정신이 뼈에 사무쳐 있었다고 판단하게 된다.
이 뜻은 바로 임금이 백성을 아낀다 하는 이전대의 봉건군주들의 애민과는 다른 성격임을 알 수 있다. 세종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몸소 실천하는 방법으로 백성을 사랑한다는 뜻이 나타난다. 곧 애민정신이 관념적인 수준에서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실제의 정치에도 반영되었기 때문인데, 세종이 언어 문자 정책과 함께 농업 정책 및 의약 정책이나 환과고독(鰥寡孤獨), 폐질자, 천민들을 위하고 민의를 수렴하는 사회 정책 등 어느 한 면도 지나치지 않고 진정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친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차원적 과학성을 지닌 훈민정음의 제자원리와 월인천강지곡의 수준 높은 문학적 경지를 볼 때, 세종의 유교와 불교와 도교를 깊게 이해하고 통찰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와 더불어 거센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하니 당시 백성들의 의식과 감성을 살핌이 얼마나 세심하였는지를 다시 한 번 엿볼 수가 있다. 또한 세종은 새 문자를 만듦에 있서 백성들이 빠른 시일 안에 다 배워 알 수 있도록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훈민정음 창제의 실질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훈민정음 정인지 서문을 통해 그 효용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게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訟事)를 청단(聽斷)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 서문을 보면 정인지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하였는데, 그것은 언어의 자주성의 개념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고, 소리와 말이 일치해야 백성이 편안해질 수 있으며 억울한 일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3. 훈민정음 창제의 배경과 그 성격
세종대왕은 아주 일찍부터 어려운 한문으로 되어있는 중국 쪽의 법률들을 명료하게 파악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율문은 다른 한문 글과 달리 이중적인 어려움을 초래했는데 법률적인 전문 지식과 함께 그 동안 완전히 달라진 중국식 한자 읽기와 우리식 한자 읽기의 커다란 차이를 극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율문 번역의 필요성을 먼저 느낀 것은 신하들이었다. 세종 13년 6월 22자 기록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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