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鄭芝溶의 생애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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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지용鄭芝溶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정지용은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읍에서 한약상을 경영하던 영일 정씨 태국(泰國)을 아버지로 하동 정씨 미하(美河)를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한때 천주교 신자이기도 했으며 그의 친모 사이에는 외아들이었으나 둘째 부인 문화 유씨 사이에 남매를 얻었으며 남동생 화용은 일찍 죽고 지용이 무척 아낀 여동생 계용(桂溶)이 있다.
그 당시 풍습에 따라 12살 때(1913) 동갑의 부인 송재숙과 결혼했으며, 1914년 3월 25일 옥천공립보통학교 4년제를 졸업하였다. 1918년에는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재학 중 선배인 홍사용, 박종화, 김영랑, 후배인 이태준을 만나 글 쓰기의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습작활동을 시작한다. 1919년 12월에 창간호에 유일한 소설 ‘3인’을 발표한다. 또한 동인지를 김화산, 박팔양, 박소경 등과 함께 주도하였다. 1922년에는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다. 1925년 [학조] 창간호에 를 비롯하여 동시와 시조시를 발표하고 1930년 동인으로 활동하여 순수시운동의 물길을 틀며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다. 1939년 [문장]지의 추천 위원이 되어 청록파 시인과 김종한, 박남수 등을 등단시켰다. 그의 시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와 선명한 이미지를 구사하여, 1930년대 시의 모더니즘과 이미지즘을 대표하는 것으로 새로운 언어 감각으로 시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된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시풍이 바뀌어 동양적인 관조와 고독의 세계를 많이 다루었다. 1950년 납북되었다가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집으로는 [정지용시집(1935)],[백록담(1941)],[지용시선(1946)],[문학독본](1948)과 [산문(散文)](1949)이 있다.
2. 정지용의 문학적 경향과 변모
정지용은 우리 현대 시사에서 언어에 대한 자각을 각별하게 드러낸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까지의 대다수 시인이 감정의 분출에 의거하여 본능적인 시를 썼다면 1920년대 초반에 작품 발표를 시작하여 1930년대 대표적 시인인 정지용에 의하여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포착해 내는 시가 씌여진다. 절제된 언어의 구사는 정지용의 시에서 일관되는 특성이지만 그의 시세계는 몇 단계의 변모 과정을 보인다. 정지용 시의 전개 과정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23년경부터 1933년경까지의 서정적이며 감각적인 시, 1933년 [불사조] 이후 1935년경까지의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시, 그리고 [옥류동](1937), [구성동](1928) 이후 1941년에 이르는 동양적인 정신의 시 등이 그것이다. 특히 주목을 요하는 것은 정지용의 종교시가 [카톨릭 청년](1933)의 창간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 지면에 대부분 그의 종교시가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초기의 감각적인 시와 후기의 고전적인 시들의 교량적인 역할을 종교시가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서정시 작품은 20년대 초반의 젊은 문학도가 객지에서 학창 생활을 하며 갖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국 풍물에 대한 동경을 보여 준다. 초기 시에서 정지용이 남다르게 보여준 감각적 선명함은 후기 산수시와 긴밀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초기에 정지용은 다수의 바다 시편을 썼다. 바다에서 산으로 소재가 이동되면서 산수시 계열의 시들이 씌여진다. 감각에서 정신으로의 변천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의 시편들과 산의 시편이라는 양자는 겉으로는 지향하는 바가 다를지라도 본질적으로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정지용이 산수시로 나아간 것은 식민지 말기의 고통스러움을 정신적 극기로 감내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변절과 친일을 강요당하던 1930년대 말의 식민지적 압력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일은 산수에 자신을 숨기는 일이었을 것이며 동양의 고전적인 전통 속에서 자신의 시적 방법론과 은일의 정신을 체득하려 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의 언어적 인식은 그의 시를 단순히 복고적인 취향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이러한 점에서 그의 시가 지니는 현대적 의의가 명백해진다. 정지용이 자신의 시적 천분을 조탁하여 이룩한 정묘한 산수시는 당대 최상의 수준이며 한국어가 지닌 언어적 가치를 극대화시킨 한 예가 된다. 정지용은 서구 추수주의적인 시적 유행을 넘어서서 우리의 오랜 시적 전통에 근거한 산수시의 세계를 독자적인 현대어로 개진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3. 주요작품의 특성
< 향수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