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료적 문학과 처사적 문학은 공히 사대부의 문학으로 사대부의 진퇴에 따라 서로 내왕하는 가변적인 관계에 있음. 그러나 이 시대의 문학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을 심성수양의 수단으로 보는 도덕주의 문학이었음. 사대부의 과거등용과 관료진출 후에는 문학을 심성수양의 수단으로 보는 성리학자적인 학문의 영역으로 돌아가기 어려움.
관료생활의 특성과 관료문인들의 사장학적 풍토의 영향으로 사장에 치중하여 사장배격론에 맞서 사장옹호론을 펴게 됨. 그러나 사림파의 문학이론에 정면으로 대항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약한 사상적 빈곤에 머물게 됨.
퇴계·율곡시대에 이르러 주자학적 이념에 입각한 도덕주의 문학론이 득세.
처사적 문학이 시대의 주류로 올라섬에 따라 관료적 문학도 도학주의에 순종·근엄한 문장으로 심지어 도학의 일부로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짐.
뚜렷한 사조를 이룬 것은 사림파의 처사적인 문학이었음. 주자학이 지배적 시대사상이었던 조선시대에서 전통 성리학을 이어나간 사림파의 도덕주의 문학론은 근본적으로 부정될 수 없는 사상적 뿌리가 깊은 것이었음. 따라서 이론적인 정면대립은 불가능했고 사장배격과 사장옹호라는 부분적 논쟁이 있었을 뿐임. 도학파·사장학파의 문학적 자세에 대한 차이는 환경의 차이에서 기인·학문적 차이에서도 기인→사회적 변동과 과거제도의 변화 등이 작용.
무오사화 전까지 양자의 뚜렷한 이론적 대립은 없었음. 성종조부터 사림파의 중앙 진출이 대거로 이루어지고 사장학파들은 일부 사림파의 사장배격론에 정면도전을 회피할 수 없었음. 무오사화·갑자사화(연산군 10년)를 거쳐, 남곤·심정·홍경주등 훈구세력이 조광조·김식·김정 등 젊은 도학자 선비들을 탄압한 기묘사화(중종 14년·1519)를 전후하여 사장배격론과 사장옹호론의 논쟁이 표면화·극단적으로 가열.
사장학은 권근-서거정·성현-김일손·남효온·조위에 의해 성해지고, 성현·남곤·이행에 의해 사장 옹호론으로 발전
정도전 도은문집서→문을 재도지기로 생각하되, 도를 싣는 그릇인 문을 통해 도를 구현하는 길은 경을 근본으로 삼는 데 있다는 존경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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