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다양한 풍속과 습관으로 가득한 중국의 명절은 중국이라는 나라와 민족의 문화를 비춰주는 거울이자, 중국인의 특성을 살필 수 있는 창구이다. 따라서 첫 번째로 중국의 명절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의 명절과도 유사한 중국의 명절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것을 통해 중국인들의 문화, 그리고 풍속의 뿌리를 이해하도록 한다.
춘절
중국의 민속 명절에는 춘절(春節),원소절(元宵節),청명절(淸明節),단오절(端午節),칠석절(七夕節),중추절(仲秋節),중양절(重陽節)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성대하고 민족적 특징이 있는 것은 역시 춘절이다. 춘절은, 고대에는 위엔단(元旦)’, ‘위엔르(元日)’, 위엔차오(元朝)’, ‘정단(正旦)’, ‘신정(新正)’ 등으로 불렸고 민간에서는 ‘꾸어니엔(過年)’, ‘꾸어신니엔(過新年)’ 이라 칭했으며 정월(正月) 초하루를 ‘1년의 으뜸이요, 1월의 첫날이요, 時의 시작이다’라고 하여 “싼위엔(三元)”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춘절의 이칭(異稱)으로 사용된 ‘元日’에서의 ‘元’은 개시한다는 의미로 ‘元日’은 첫날을 의미한다. 또한 ‘朝’와 ‘旦’은 새벽을 뜻하는 글자로 하루의 시작을 함축하고 있고 ‘正’은 표준, 즉 준칙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대에는 초저녁에 북두칠성이 떠 있는 위치가 계절의 정확한 표준방위가 된다고 하여 두건(斗建) 혹은 동건(同建)이라 칭한 것처럼 ‘正旦’의 의미는 1년의 기준이 되는 새벽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元日’은 주로 선진시기(先秦時期)에 주로 사용되었던 춘절명칭이고 서한시기(西漢時期)에 이르러서는 ‘三朝’, ‘正月’, ‘正旦’이라 불려 졌으며 현재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新正’, ‘元旦’ 이라는 명칭은 위진남북조시대에 처음 사용되었던 것이 명대(明代)까지 지속적으로 쓰이다가 청대에 이르러 ‘元旦’으로 통일되었다. 그렇다면 춘절(春節)이란 용어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동한의 문헌에 따르면 춘절이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었으나 봄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춘절과 관련이 없으며, 남송 문천상(文天祥)이 기록한 ≪文山集≫ 권 20에 기록된 이란 시(詩)에 ‘춘절 전 3일을 강남에서는 小年이라 한다’라고 하여 춘절이란 표현이 있으나 이 또한 입춘을 나타내고 있어 음력 1월 1일과는 관련성이 없다. ‘춘절’이란 용어가 중국인 사이에 보편적으로 사용되게 된 계기는 1912년 1월 2일 손중산(孫中山)이 각 성에 보낸 통지문에서 ‘중화민국은 양력을 사용하되 황제기원 4691년 11월 13일을 중화민국 元年元旦으로 한다’라고 선언하였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1949년 12월 23일 개최된 12차 정무회의에서 신년(公曆元旦), 춘절(春節), 노동절(勞動節),국경기념일(國境紀念日)을 제정함에 따라 ‘元旦’은 양력 1월 1일을, 그리고 춘절은 정월 초하루를 지칭하게 되었다. 음력 1월 1일로서, 우리의 설날에 해당하는 중국의 춘절은, 전통적으로 농업사회인 중국에서 봄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를 택하여 천지신명과 조상들에게 지난해의 풍요로운 가을걷이에 대해 감사하고, 올해의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기 위하여 발생한 명절이 바로 춘절이다. 서양에서 매년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술렁이듯이, 중국에서도 12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춘절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한다. 우선 음력 12월 8일에는 납팔죽(臘八粥)을 먹는다. 납팔죽은 오곡이 풍성하여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라오서(老舍) 뤄퉈샹즈『駱駝箱子』의 “새해가 가까웠군. 어느덧 납팔일이니.(年越越近了, 一晃已是八。) 에서 보듯이, 춘절의 분위기는 납팔죽을 먹으면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이어서 음력 12월 23일에는 조왕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집안에 복을 내려주길 기원한다. 춘절 전날 밤인 음력 12월 30일, 즉 제석(除夕)에는 온 가족이 모두 모여서 연야반(年夜飯)을 먹는다.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가족이 있다면, 그의 밥그릇과 젓가락을 함께 준비하여 모든 가족의 단란함을 표시하기도 한다. 연야반을 먹은 다음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환담을 나누거나 TV 및 오락을 즐기면서 밤을 지 새는데, 이것을 수세(守歲)라고 한다.
바야흐로 새해로 넘어가는 순간인 자정이 되면, 천지를 뒤흔드는 폭죽 소리가 춘절을 알린다. 본래 폭죽은 말 그대로 대나무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종름(宗)이 쓴 『형초세시기 楚』에 따르면, 정월 1일 마당에서 대나무를 터뜨려 산조(山)와 악귀를 쫓았다고 한다. 산조는 깊은 산 속에 사는 뿔이 넷 달린 괴술로서, 매번 춘절이면 나타나서 가축과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산조가 밝은 빛과 폭발음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대나무를 태워 빛과 폭발 소리를 내어 산조의 침입을 예방하였다. 이후 춘절 전야가 되면 폭죽을 터뜨리는 풍속이 생겨난 것이다. 요란한 폭죽 소리는 사악한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명절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동안 폭죽은 공기를 오염시키고 화재를 유발하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등의 폐해가 크다는 이유로 베이징 등의 대도시에서는 사용이 금지되었었다. 그러나 올해(2006)년부터 사용 금지가 풀렸고, “중국의 춘절은 폭죽으로 시작해서 폭죽으로 끝난다.” 고 할 정도의 시도 때도 없이 폭죽을 터뜨리는 중국 특유의 광경을 베이징에서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 초에 어떤 작가는 베이징의 춘절을 묘사하여 “밤낮으로 폭죽소리가 끊이지 않고, …문 앞에는 어제 저녁 터뜨린 폭죽의 잔해가 수북하게 쌓여있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난 2000년 1월 1일 모 방송국의 뉴스에서는 “오색폭죽이 베이징 상공을 수놓고 중국 전통의 용춤과 사자춤이 공연되면서 새천년을 자축하는 행사는 절정에 달했습니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의 한 세기라는 시차를 넘나들며 활약하는 폭죽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순간이다.
드디어 춘절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일찌감치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 사람들이 친지나 가까운 사람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한다. 한편 춘절 기간에는 집집마다 연화(年畵)를 사서 실내에 붙인다. 봄을 맞이하는 기쁨을 표현하고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진 연화는 사악한 귀신을 쫓는 신의 모습, 복이나 행운을 기원하는 내용, 신화고사나 풍속을 그린 것 등 소재가 매우 다양하며, 최근에는 영화배우나 풍경화 등도 많아지고 있다. 춘련(春聯)이란 것도 있는데 이것은 붉은 종이에 검은색이나 황금색으로 길상이나 축복의 말을 적어서 대문에 붙이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춘련으로는 붉은 종이에 복(福)이나 춘(春)을 써서 실내에 거꾸로 붙이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다양한 풍속과 행사로 진행되는 춘절은 현대 중국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전통이 점차 변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납팔죽이 캔으로 만들어져서 판매되고, 손으로 빗던 교자(餃子)가 냉동 교자로 대체되며, 세배는 전화, 호출기 및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하며, 연하장 역시 인터넷 사이트에서 수백종을 찾을 수 있는 등 춘절의 풍속도가 변해가고 있다. 변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변하는 명절 분위기는 당연한 풍경인가 보다.
원소절
원소절은 음력 1월 15일로서, 우리의 정월 대보름에 해당한다. 이날 저녁이 되면 거리와 공원, 사찰 등에 각양각색의 오색찬란한 등롱이 넘쳐나 장관을 이루기 때문에 등절(燈節)이라고도 하며, 새해 들어 처음으로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이어서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한다. 중국인이 원소절을 지내기 시작한 것은 한대(漢代)부터이고, 등이 출현한 것은 수대라고 전해진다. 원소절에 등을 달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옥황상제가 인간 세상에 내리려는 불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등을 고안하였다는 전설이다. 아주 옛날 천궁을 지키던 신조가 길을 잃어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가 사냥꾼의 화살에 맞아 죽은 일이 발생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옥황상제는 대노하여 정월 보름에 병사를 내려 보내서 인간 세상에 불을 질러 인간을 벌하려 하였다. 그러나 마음씨 착한 옥황상제의 딸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 사실을 인간들에게 알려주었고, 며칠을 궁리한 끝에 한 노인이 묘안을 내놓았다. 정월 보름을 전후하여 집집마다 붉은 등을 내걸고 폭죽을 터뜨려 불꽃을 올려서, 인간세상이 이미 화염에 휩싸인 것처럼 보이게 하자는 것이었다. 천병들이 인간세계에 불을 놓기 위해 인간계를 보았는데 곳곳에 불이 지펴져 있었다. 그들은 옥황상제에게 임무를 마쳤다고 보고하였고, 이 묘안 덕택에 인간은 옥황상제의 벌을 피해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매년 정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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