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역사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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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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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5만년전 유럽 대륙과 이어져 있던 브리튼 섬에 혈거수렵인이 살았다는 흔적을 발견된다. 지각의 함몰로 대륙과 떨어지고 난 뒤 유럽 대륙의 갈리아 ·발트해 연안 등의 지방에 살던 종족이 영국 해협로 이주하고, 신석기 시대의 영국에는 이베리아인이 살고 있었으며, 기원전 6세기경 즉 청동기 시대로부터 철기 시대 초기에 걸쳐 켈트족이 유럽에서 건너와 정착한다.
* 5만 년 전 유럽 대륙과 이어져 있던 브리튼섬에는 혈거수렵인이 살았다는 흔적이 있으나 빙하의 확대와 함께 섬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지각의 함몰로 대륙과 떨어지고 난 뒤 유럽 대륙의 갈리아 ·발트해 연안 등의 지방에 살던 종족이 영국해협을 건너왔으며, 이어 신석기시대에 이베리아인 등의 비(非)아리안계 종족이 다시 이주해와 수렵 ·목축과 원시적인 농경에 종사하였다.
그 후 청동기시대로부터 철기시대 초기에 걸쳐 켈트족이라고 불리우는 대륙의 여러 종족이 침입하여 선주민을 제압하고 정착하였다. 이들 중 북부에 거주한 게일인보다는 남부에 거주한 브리튼인이 진보한 문화 생활을 영위하였다. 그들은 물고기와 짐승고기를 먹는 것 외에 밀 ·보리 ·귀리 등을 재배하였고, 짐승 가죽 그리고 삼베옷과 양모의 직물을 착용하였다. 또 다신교를 믿고, 소부족으로 갈라져 서로 독립해 있었는데 딘 또는 둔이라고 하는 방벽을 만들어 생활하였다. 런던(London)이라는 지명은 소택지의 성을 뜻하는 켈트어 린딘(Lyndyn)에서 나왔으며, 나중에 로마인이 이를 라틴어로 론디니움(Londinium)이라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영국 브리튼섬의 켈트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로마의 지배였다. 로마제국의 갈리아 지방 통치자로 프랑스에 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지방의 종족이 브리튼인의 지지를 받아 저항했기 때문에 이를 응징하고자 카이사르가 두 차례 브리튼 섬을 침략하였고, 그 후 400년 동안 잉글랜드 지역을 지배한다.
* 영국 브리튼섬의 켈트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로마의 지배였다. 로마제국의 갈리아 지방 통치자로 프랑스에 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지방의 종족이 브리튼인의 지지를 받아 저항했기 때문에 이를 응징하고자 BC 55년과 BC 54년의 두 차례에 걸쳐 브리튼섬에 원정하였다. 브리튼의 부족들은 연합하여 로마군에 대항하였으나 카이사르는 이를 격파하고 템스강 주변의 일부를 제압하였다. 그러나 그는 본국의 전쟁 때문에 3개월 만에 영국을 떠났으며, 로마인의 본격적인 공격은 약 1세기 후에야 이루어졌다.
로마 제정시대에 들어와 클라우디우스는 43년 원정군을 일으켰고, 80년대에는 로마 군대가 스코틀랜드까지 침공하였다. 그후 로마인은 타인 하구에서 솔웨이만까지 브리튼섬을 동서로 횡단하는 장성을 구축하였다. 현재의 잉글랜드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을 약 4세기 동안 지배하였고, 런던이 상공업의 중심이 되었다. 당시의 유적은 여러 군데 남아있는데, 런던 등지의 성벽 일부와 바스에서 발굴된 온천이 특히 눈길을 끈다. 랭커스터(Lancaster) ·맨체스터(Manchester) ·윈체스터(Winchester) ·체스터(Chester) ·레스터(Leicester) ·글로스터(Gloucester) ·우스터(Worcester) 등의 지명 어미 스터(ster)는 당시의 병영지를 나타내는 라틴어의 성곽, 이른바 Castra에서 유래한다. 당시 켈트인의 비극을 말해주는 이케니 부족의 여왕 보아디케아의 반란과 이에 따른 참패의 비화가 유명하다.
4세기 후반, 게르만족의 대 이동이 시작되어 앵글로색슨족 등이 침략해 오자 로마 군대는 철수하고, 켈트족은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지방으로 밀려난다.
* 영국은 4세기 후반까지 픽트족·스코트족 등 북방계 켈트인의 침입과 함께 게르만인의 침입이 시작되어 로마인의 지배가 위협받기 시작하였다. 색슨족·앵글족·주트족 등의 게르만인의 침입이 잇따르고 대륙에서의 게르만의 민족이동, 특히 고트인의 로마 침입에 따라 5세기에 로마의 군대가 철수하자 로마의 영국 지배는 완전히 끝났다.
6세기에는 바이킹의 침입을 받기도 하지만 9세기 초 웨식스 왕 에그버트가 앵글로색슨 계의 일곱 왕국을 복속시켜 통일된 잉글랜드 왕국을 위한 기초를 마련한다.
* 침입한 게르만인은 원주민인 브리튼인과 싸워 이겼다. 6세기 말에 이르러 이들 중 앵글족은 오늘날의 잉글랜드 북부와 동부를 ,색슨족은 템스강 이남을, 주트족은 켄트주와 와이트섬을 차지하여, 켄트·에식스·서식스·이스트앵글리어·마시어·웨식스·노섬브리어의 7개 왕국을 게르만인이 건설하였다. 로마시대의 그리스도교는 게르만적 다신교에 의해 축출되었으나, 7왕국 시대에 성(聖)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다시 도입되었다.
생활의 중심이 농촌으로 옮겨지면서 로마시대의 도시는 일부를 제외하고 폐기되었다. 주민은 장로·자유민·노예로 나뉘었고, 노예는 죄인 또는 채무불이행자였다. 장로의 권력이 강하여 국왕에게 절대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후일의 마그나 카르타는 이 전통에 기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