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관등제
고이왕 대에 들어와서 백제는 중앙집권화를 추진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소국의 수장들은 자신의 족적 기반을 해체당하며 점차 중앙귀족으로 편제되었다. 이들의 왕도 내 정치적 거주처가 바로 5部이다. 5부의 명칭에는 처음에는 토착어로서 사용하다가, 나중에 그 이름이 동서남북중 5방위를 나타내는 말로 변화하였다. 5부체제의 성립으로 중앙권력이 강화되고 지배조직이 확대되면서 관등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고이왕은 이러한 관등을 귀족들에게 수여하여 이들을 왕권 하에 편제해갔다.
그러나 5부 체제 단계에서 왕권이 전 시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강화된 것은 사실이나, 왕권이 중앙 귀족세력들을 완전히 장악한 것은 아니어서, 부의 대표세력들이 독자적으로 部兵을 운영하고, 소국단계의 지배조직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등 기존의 세력을 상당부분 유지하고 있었다.
근초고왕 대에 이르러 백제는 중앙집권 체제를 완비하게 되어, 5부의 유력자들이 지녔던 독자적인 세력기반이나, 군사 운용권, 독자적 지배조직도 국왕 중심의 지배체계 내로 흡수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등제도 분화되어 백제후기 16관등 중 文督, 武督을 제외한 14개 관등이 이때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개로왕 대에 와서 고구려에게 수도를 함락당하고, 문주삼근동성왕 대를 지나면서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를 보낸다.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은 무령왕 대에 극복하고, 그 토대위에 성왕은 사비천도를 단행한다. 사비 천도를 계기로 성왕은 국가체제 전반을 새로이 정비하는데 이 과정에서 문독과 무독을 추가하여 16관등제로 정비하게 되었다.
백제 16관등의 명칭과 관등에 따른 복색, 띠
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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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