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자본주의에 대한 나의 생각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나는 일단 창조적 자본주의를 말하기 전에 보이지 않는 손을 이야기 했던 에덤 스미스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 해 보고 싶다.
에덤스미스는 최초의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독실한 기독교 신학자다.
그의 저작 국부론에 가려서, 그의 정신적 사상을 알 수 있는 도덕감정론 그냥 묻혀 버리고 말았다. 거기에는 국부론에서 언급되었던 보이지 않는 손이 똑같이 나온다. 그곳에서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회복이다. 신의 은총으로 만들어진 거역할 수 없는 자연법칙이며, 모든 자연물에 적용되는 것이라고 그는 말 했다.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사회가 불균형이 생기면 그는 공감법칙을 통해서 정상상태로 돌아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서문에도 어렴풋이 나와 있듯이 스미스의 공감법칙은 동양사상으로 놓고 보면 측은지심과 동일한 것으로 인간의 착한 본성은 이기적 주체라 하더라도 가려질 수 없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스미스의 핀 공장의 비효율성을 분업으로 해결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 일화가 사실은 분업의 효율을 말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면을 바라보면, 스미스의 측은지심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효율로 인한 저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에 고통 받는 일일노동자를 구제하고자 했던 스미스의 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착취와 인간소외를 가져온 것이다.
그렇다면, 스미스는 정말로 그것을 원했을까.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숙련공에 대한 언급이다. 자본가와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갑을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가 작업 숙련을 통한 도구개발과 노하우전수 등을 이유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임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본주의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사회주의를 만들어낸 마르크스의 이론적 도의적 토대는 상당부분 일치한다. 이 두 사람은 아마도 자신들의 이론을 위해 한 세기가 넘도록 수백만명이 목숨을 바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빌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창시자인 에덤스미스의 마음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에덤스미스는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문제를 예견하고 이미 견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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