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플라톤이 초감각적인 이데아의 세계를 존중한 것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가까운, 감각되는 자연물을 존중하고 이를 지배하는 원인들의 인식을 구하는 현실주의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이 두 철학자가 대립되었다는 생각은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철학에서 깊은 영향을 받아 출발하였고, 뒤에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하는 데도 플라톤의 철학적 범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적 특징은 소여(所與)에서 출발하는 경험주의와 궁극적인 근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근원성, 지식의 전부분에 걸친 종합성에 있다.
- 행복하게 사는 방법, 중용
사람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한쪽에 극단적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너무 가난한 사람은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스러워 할 것이고 너무 부자인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잃지 않기 위해 걱정하고 고민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그것은 즐거움이 아닌 고통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목적의 실현이야말로 그 존재의 이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만물은 그 어떤 목적을 향해서 움직인다.” 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최고선의 실현’ 즉 ‘행복의 추구’라고 보았다.
인간의 행복은 이성에 따른 행동으로 자신의 능력을 조화적으로 발휘할 때 얻을 수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행복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중용의 덕’을 지킬 때 가능하다.
‘중용’이란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중심적인 사상의 하나로서, 덕은 과잉과 과소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간에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1과 3의 중간은 2이다.’처럼 산술적 의미에서의 중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친절이 지나치면 아첨이 되고 부족하면 퉁명스러움이 된다. 또한 자유가 지나치면 방종이 되고 부족하면 억압이 된다. 이렇듯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친절과 자유’를 유지하는 것이 중용이라 할 수 있다.
- 덕과 중용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적 덕은 실천을 통해서, 즉 습관을 통해서 생겨나며 우리의 행위가 덕이 되기 위해서는 중용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것이 더 이상 보태거나 떼어낼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할 때 그 작품은 가장 뛰어난 작품이 된다. 정념과 행위에 있어서도 더 이상 부족하지 않고, 더 이상 넘치지도 않는 것을 선택하게 되면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 되어 가장 좋은 행동, 가장 좋은 정념의 상태가 된다. 정념과 행위에 있어 과도한 부족을 피하고 중간을 선택하는 것이 덕이고, 바로 이 중간에 해당하는 것이 중용이다. 중용이란 마땅한 때에, 마땅한 일에 대하여, 마땅한 사람들에게 대하여, 마땅한 동기로 그리고 마땅한 태도로 느끼고 행하는 것이다.
중용이 중간을 의미한다고 해서 산술적 중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경우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두 그릇의 밥이 중용일 수 있고, 배가 부른 사람에게는 굶는 것이 중용이 될 수가 있다. 따라서 중용이란 행위자 자신에 관한 사실들을 포함한 상황에 가장 적절하고 알맞으며 마땅한 것이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 엄슨, J.O / 서광사 / 1996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 / 박전규 / 서광사 / 1990
아리스토텔레스/ 31 / 정명오 / 大洋書籍 / 1972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이론과 도덕 교육 : 실천적 지혜와 도덕적 덕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 김정신 / 경인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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