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실학자 홍대용
조선 후기 과학사상의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덕보(德保), 호는 담헌(湛軒)·홍지(弘之). ID2 조선시대 실학자 가운대 가장 진취적인 사상가중의 한사람으로 조부는 대사간 용조(龍祚)이며 부는 목사 역() 이었으며 당대의 석학이자 노론파 중심 인물인 김원행에게 주자학을 배웠다 과거에 여러번 실패하고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였으며,
35세 때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이던 숙부 억(檍)을 따라 자제군관(軍官) 자격으로 북경에 가서 중국 및 서양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청나라 고증학과 서양문물을 접하고 사상 체계의 큰 변화를 겪게된다
그의 북경 교류로 북학자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박제가등에게 영향을 주어 북학파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그들과 교유하였고 당시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등을 이해하였고 당시 중국에 전해진 서양의 자연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그의 집안은 당시의 집권당파인 서인의 노론파에 속하였다.
1777년(정조1년)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1778년 태안현감, 1780년 영천군수를 지내고 1783년 모친이 연로하다는 이유로 사직하고 서울로 돌아와 곧 중풍으로 사망하였다
Ⅱ 학문 및 사상
1) 개혁적인 학문
개혁을 꿈꾼 과학 학문가!
현실에 대한 인식과 구체적인 실천성을 결여한 당시의 학문 경향을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학문 태도는 그에게 현실에 대한 바른 시각과 역사현실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주체적인 파악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실증적 사실에 근거한 과학적 사유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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