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기’는 고대가 끝나가고 있으면서 중세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고대의 특징과 중세의 특징을 공유한 일종의 과도기적 시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중세화를 먼저 이룩한 곳에서 보내는 외부의 충격이 내부의 변화와 맞물려 다음 시대로 나아가게 했다. 내부의 변화가 보이기만 한 곳은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기까지 나아가다가 말았다. 내부의 변화에 외부의 충격이 추가된 경우에는 중세를 이룩했다. 이때 외부의 충격이라 함은, 한문, 산스크리트, 아랍어, 라틴어 등의 공동문어로 집약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내부의 변화는 연구가 모자라고 양상이 미묘하여 단정 짓기 어려우나, 한문이 외부 충격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한문이 들어와 시대를 바꾸어 놓았고, 한자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비롯한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기’가 한문을 제대로 구사해 한문학을 일으키자 끝나고, 다음 시대인 중세로 들어섰다. 한자 이전에 우리나라의 선행 문자가 있었다는 설이 분분하지만, 한자를 받아들여 문자생활의 시대에 들어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자는 원래 동이족의 문자였던 것 같다. 그러나 중국인의 선조인 한족이 글자를 늘리고 용법을 가다듬고, 발전시킨 한문을 여러 이웃에게 전해주었다. 한자의 수용 시기는 분명히 말할 수 없으나 은나라가 망하자 기자(基字)가 우리 땅으로 왔다는 설이 있다. 이것의 증거로 명도전(明刀錢)과 방족포(方足布)라는 이름의 화폐, 진과(秦戈)와 동사라는 무기에 명문(銘文)이 있는 것이다. 이로 보아 기원전 222년(진시황 25)의 것으로 편명되었다. 그 시기는 기자조선 말기에 해당한다. 또한 한자가 적힌 인장, 화폐, 칠기 등이 발견되어 구체적인 증거 평안남도 용강군에 있는 비석, 그 비석은 “점선장”이 세워 신명을 섬긴 말을 적은 것이어서, 라고 일컫는다. ‘점선’은 고장 이름이고, ‘장’은 그 고장의 지배자를 뜻한다. (참고자료 [1] 참조)
를 제공한다.
고대의 선진이었던 부여마한가야는 한문을 시험하다가 말아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기까지만 나아갔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는 뒤떨어진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세화를 서둘러 한문 사용을 국력 향상의 방법으로 삼아야 했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바로 선진이 후진이 되고 후진이 선진이 되는 이치인 셈이다.
4.2. 전설 민담시대로의 전환
설화는 신화 전설 민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는 신화가 중요한 구실을 하다가 다음 단계에 이르러서는 전설과 민담이 신화를 대신해, 새롭게 문제된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 아주 적합한 갈래로 등장했다.
신화가 특히 중요시된 시대를 신화시대라 하고 전설과 민담이 뒤를 이은 시대를 전설 민담시대라고 한다. 고대는 신화시대였다가 신화에 대한 불신이 일어나면서 전설 민담시대로 들어서는 변화가 나타난 시기가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기이다.
신화시대는 자아와 세계가 동질적이거나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던 시대이다. 사람이 자아라면, 자연은 세계이고, 주체가 되는 사람이 자아라면, 객체가 되는 사람은 세계이다. 자아와 세계가 대결해 동질적인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신화의 특징이다. 그리하여 신화를 존중하던 사람들은 사람과 자연 사이에서 생기는 마찰은 주술로, 인간사회 내부의 불화는 공동체적인 유대 강화로 해결하면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러한 신화시대가 행복한 시대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기에는 합리적 검증을 거부하는 자기중심주의의 일방적 논리를 갖추고 횡포를 자행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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