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김동환 작가 분석3
한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자로 일을 하다가 1929년 월간지 《삼천리(三千里)》를 창간 주재하였고, 1938년 《삼천리문학(三千里文學)》을 발간하여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1939년 총독 미나미[南次郞]의 등을 《삼천리》에 실어 잡지의 내선일체 체제를 마련한 그는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상임이사 등을 지내면서 적극적으로 친일매족의 선봉에 나서기도 하였다. 1950년 6 ·25전쟁 때 납북되어 생사불명이다. 저서에 《승천(昇天)하는 청춘》 《삼인시가집(三人詩歌集)》(李光洙 ·朱耀翰 공저) 《해당화》 등이 있으며, 그외 다수의 소설 ·평론 ·수필 등이 있다.
2. 작가의 작품경향
1920년대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서 대응해 나갔던 시인들의 태도는 개인적인 이상과 한계 안에서 도전과 좌절의 문학을 실현시킴으로써 각자 변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중 김동환은 ‘현대시사상 초유의 서사시집인 과 을 통해 개인적 정감과 단시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초기 시단의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사실 김동환은 ‘지나치게’ 현실에 민감한 시인이다. 김동환은 초기에는 신경향파에 속했으나 향토적이며 애국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민요적 색채가 짙은 서정시를 주로 썼다. 그리고 일제 치하에서 카프와 같은 애국문학자들이 속출하자 그 역시 애국문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가 후에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을 따라 친일문학을 하기도 하고, 해방 후에는 자신의 친일 활동을 반성하고 반민특위에 자수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의 변화는 그의 문학에 큰 오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일제 말기에 드러낸 친일 행위와 납북으로 말미암아 그의 시적 성과를 최초의 서사시로만 단정지어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미 30여개가 넘는 시에 곡이 붙여져 있을 정도로 그의 시는 익숙하다. 그런데 그 시를 쓴 시인은 일제 말기에 드러낸 친일 행위와 납북으로 인해서 그의 시적 성과까지 크게 저하되어 평가받는다. ‘그의 시’는 용납하되, ‘그’의 시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우리들의 태도는 그야말로 모순이 아닌가 싶다.
몇몇 기존의 연구가들이 그를 민족시인이면서 친일시인이고 민요시인이면서 (新)경향시인이라 평가한 것 역시 그의 시에 대하여 포괄적이고 입체적인 조망이 되지 못하고 평면적이고 단편적인 것에 그쳤기 때문인 것으로 전면적인 고찰이 선행되어야만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3. 주요작품
제1부[1]장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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