巴人(파인) 김동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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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巴人(파인) 김동환론
1. 작가의 생애와 활동
파인은 1901년 두만강을 끼고 북간도와 마주한 국경과 멀지 않은 함경북도 경성에서 부친 김석구와 모친 마윤옥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족사적으로는 중시조인 매월당 김시습의 18대 손으로 그의 문사적 맹아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부친 김석구는 함일학교의 경영에 참여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도 있고 시대적으로 일찍 깨어 있던 것으로 보이나 한일합방이 일어나자 그 울분으로 그의 옥토 1만여평을 함일학교에 희사한 후 가사를 등지고 북간도와 러시아 일원을 떠돌았다. 때문에 김동환은 고학으로 공부를 해야했다. 중동학교 4학년 재학중이던 1920년 학생들이 집필자이자 편집자인 잡지 『학생계』현상공모에 그의 시가 1등으로 당선되었다. 그 후 일본 도요대학 문화학과에 진학하여 고학하였으며 관동대지진이 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이 시기는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직후로 사상적으로 문화적으로 자유주의적 분위기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귀국한 이듬해에는 양주동이 주도한 『금성』 1920년 초반의 시 전문동인지. 1923년 11월 10에 창간되어 1924년 5월 23 일 통권 3호까지 발행되었다. 1, 2호는 유엽이 발간하였고, 3호는 양주동(梁柱東)이 발간하였다. 금성이라는 제호는 여명을 상징하는 샛별의 뜻과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뜻을 합한 것이다. 양주동의 프랑스 상징파 시인 보들레르와 베를레느의 작품 번역 소개, 백기만양주동의 타고르 시 번역, 손진태의 투르게네프 산문시초 등이 보인다.
지에서 시 「적성을 손가락질하며」로 문단에 첫발을 내디뎠고 1925년에 그의 대표작인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을 발표하였다. 카프에 참여하였다가 1920년 후반에 이탈하였으며 카프와는 반대편에 위치한 이광수, 주요한등 민족주의자들과 교류하였다.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저항적이거나 민족주의적인 김동환의 면모는 자취를 감추고 친일의 길을 걷는다. 김동환은 1942년 『삼천리』의 제호를 『大東亞』로 바꾸고 일제의 침략적 군국주의를 설파하였으며 창씨개명을 하였다. 또한 일본제국주의를 칭송하는 시를 쓰고 학병에 참여할 것을 권하는 강연에 나섰으며 친일단체에 두루 참여하는 굴절된 모습을 보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후 1950년 7월 23일 납북되었고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집단수용소로 추방된 후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2. 작가의 작품경향
일찍이 주요한은 김동환의 시를 ‘북국 정서’ 주요한, ‘김동환의 시세계’, 『현대문학』97호, 1963, 1.
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만큼 김동환 시가 지닌 두드러진 특징은 북방적 정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동환의 이러한 북방 정서와 극복 의지는 시 「선구자」, 「물결」, 「북청 물장수」등 초기시를 관류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이렇게 볼 때 파인의 초기 시편들은 대체로 추위와 어둠으로 요약되는 북방의 모습과 정서를 배경으로 하여 현실의 비극성을 드러내면서, 이에 대한 극복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그는 북방적 강인함과 매서움을 표현함으로써, 20년대 우리의 다른 시편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변경을 개척하고 확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김동환의 시세계는 크게 3기로 구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