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 이후의 한국 시단은 좌우 이념 대립으로 인한 극심한 혼란의 시기였고, 사회적 환경 역시 혼란과 갈등이 극심하였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인이 등장할 만한 제반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유일한 범문단지로 1948년에 『문예』가 창간되었고, 전봉건이 이 잡지를 통해 신인으로 등단함으로써, 전봉건은 해방 후 한국시의 제 1세대로 출발하게 된 셈이다.
해방 후 한국시 제 1세대는 대부분이 일본어를 공용 언어로 사용하면서 성장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일본어로 사유하면서 사물과 현실과의 관계를 정립한 사람들이면서 해방된 나라의 모국어로 시를 썼다. 해방 후 시단 등단을 앞둔 신인들은 대부분 이런 딜레마에 당면하였다. 전봉건 역시 그런 딜레마를 겪었으며, 그런 어려움 속에서 등단하였다.
전봉건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 신인으로 등단하게 되면서 한국시 발전에 기틀을 제공하였다. 특히, 그가 실제로 참전하기도 한 625전쟁 체험의 상상 원형을 모국어로 표현하여 시의 깊이를 천착해 보여주었다. 전쟁체험을 상상의 원형으로 한 그의 탐구는 시인으로서의 전 생애를 거쳐 주요한 모티프가 된다.
『사랑을 위한 되풀이』에 수록된 세편의 장시들은 전봉건이 50,60년대에 쓴 〈사랑을 위한 되풀이〉〈춘향연가(1967) 그리고 『속의 바다』(1970)를 개작한 것들이다. 부분적으로 손질한 것이나 생략된 것이 있으나 초판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세 편을 한 자리에 묶어 조망해 보니 각 편 딸 읽었을 때는 깨닫지 못했던 그의 시의 다양성이 눈에 띄게 돋보인다. 또한 전봉건은 1969년 4월 시전문지 『現代詩學』을 창간하면서 한국시의 진흥발전에 기여하였다.
2. 작품경향과 주요작품
전봉건의 상상 원형으로 대표적인 것이 625전쟁 체험이다. 장시 『춘향연가』를 제외한 많은 시편들에 전쟁 모티프들이 다양하게 변모되면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625전쟁은 많은 작가들에게 전쟁이라는 중요한 창작 과제를 부여하게 되었다. 종전 직후의 시기나 전쟁 세대의 작품에서 전쟁과 관련된 소재나 주제는 어렵지 않고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1950년대 전후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들에게 전쟁은 단순한 소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들에게 전쟁은 창작의 원체험 고 은 『1950년대』, 민음사, 1973. p.13.
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625전쟁을 체험한 모든 시인이 1950년대의 정신적 특질을 담보하고 있다고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특정한 시기에 편중하여 전쟁 체험을 작품에 수용할 수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전쟁을 창작적 모체로 삼은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을 원체험으로 삼아 평생 풀어야 할 시 작업의 과제로 삼은 전봉건 시인의 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부상을 당한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그 전쟁으로 자기 친형을 잃기도 하였다. 이러한 개인사적이고 가족사적인 상처는 그가 전쟁을 시적 원체험으로 삼기에 충분한 여건을 조성하게 된다.
625전쟁의 체험을 토대로 형성된 그의 시는 개별적인 작품세계를 넘어서서 보편적인 정신 세계를 담보하고 있으며 ,초기 시부터 후기 시까지 생명 회복을 주제화하는데 일관되게 기여하고 있으며, 전쟁이라는 죽음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현실 응전의 시적 방식이 되고 있다.
전봉건이 시단에 등단한 1950년으로부터 1988년 작고하기까지 40여년에 걸치는 시작활동을 다음과 같이 네 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최승호 외 (2005), 한국 현대 시인론 Ⅱ, 다운샘.
이건청(2004), 해방후 한국 시인 연구, 새미.
오세영(2005), 20세기 한국시인론, 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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