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먼 시네마 이전 종전 직후 독일의 영화산업
냉전으로 인해 탈나치 과정이 때이르게 종료되고, 미국의 반공정책이 나치 과거의 영화인이 되려는 경향이 있는 보수적인 사람들을 후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종전 후부터는 미국 영화들이 서독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고, 50년대 후반부터 일반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텔레비전으로 인해 서독 영화는 안팎으로 더욱 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더구나 1956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영화산업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많은 기업체들의 도산과 파산으로 인해 서독 경제는 휘청거렸고, 영화산업은 더욱더 악화되어 ‘영화 위기’(Kinokrise)가 다가왔다. 이 당시에 여러 영화사가 붕괴되고, 미국에 의해 대규모 제작/ 배급사였던 우파(UFA)등 여러 제작사들이 붕괴되면서 영화산업이 뿌리채 흔들리게 된다.
===> 50년대 말/ 60년대 초 영화제작은 대폭 위축되고, 관객이 감소되어 영화관도 줄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예술적 질 저하로 인해 서독 영화계는 비참한 상태로 추락했다.
뉴 저먼 시네마의 시작의 발판 - ‘오버하우젠 선언’ (1962)
독일 영화가 이렇게 최저점에 떨어진 상황을 탈출하려는 돌파구는 새로운 세대의 영화인들에 의해 시도되었다. 단편 영화들을 만들며 외국에서 인정을 받은 일련의 젊은 영화인들은 영화의 제작과 영화작품의 혁신을 통해서 돌파구를 찾고자 노력했다. 1962년 오버하우젠 영화제에 모인 26명의 단편 및 기록영화 감독들/ 카메라맨/ 영화음악 작곡가 등은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Papas Kino ist tot)고 외치며, 기존의 영화제작 방식과 미학을 명백히 거부하며 새로운 관점으로 영화를 만들 것을 선언했다. ‘오버하우젠 선언’(Oberhausen Manifesto)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혁명적 의사 표명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본문-
선언에 참여한 영화인들은 무엇보다도 제작방식과 미학에서 ‘노후하고 문제많은’ 과거의 영화와 명백하게 결별하려는 의지를 표명했다. 오버하우젠 선언은 “우선 새로운 영화 강령을 제기하고 현존하는 구세력 영화제작사들에 대한 대안을 주장하려는 시도” 였다는 데에 진정한 의미가 있었다.
초기의 뉴 저먼 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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