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 시대적 흐름에 따른 작품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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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치환 시대적 흐름에 따른 작품 경향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청마는 한일 합방 두 해 전인 1908년 8월 10일 경남 거제에서 처가가 있는 통영시 태평동으로 이주한 유준수(한의)와 박우수의 8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잘 알려진 극작가 치진은 그의 형으로 치환과 더불어 외가에서 11세까지 한문을 배우면서 자랐다. 11세 때 통영보통학교에 입학하여 그 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야마중학에 입학했으나 한약국을 하던 아버지가 다른 사업에서 실패함에 따라 귀국, 동래고보 5학년에 편입, 졸업하고 연희전문에 들지만 이듬해(1928) 중퇴함으로써 학업을 마치게 된다.
21세가 되던 1928년에 보통학교에서 함께 다니던 권재순과 결혼,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아나키스트들의 작품을 보고 이듬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24세 때 ‘정적(靜寂)’을 1931년 11월 《시문학》 지가 종간된 뒤 박용철에 의해 발행된 종합문예지. 《시문학》의 지나친 예술성 추구를 벗어나 순수한 문예작품 외에 소화(笑話), 사화(史話) 및 흥미기사가 실려 있다.
2호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게 된다. 25세 때인 1932년 평양으로 이사하여 사진관을 경영하기도 하고 27세 때 부산으로 옮겨와 한때 화신연쇄점 부산 지점 사원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30세 되던 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통영 협성상업학교 교사가 되는 것을 계기로 이후 교육계에 종사하게 된다. 문예동인지 (창간 1937. 7. 1.)를 주간하기도 했던 해였다.
그 다음해에는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떠나 빈강성 연수현에서 농장 관리 및 정미소를 경영한다. 광복 직전인 45년 6월에 귀국하여 광복을 맞이하였고 통영여자중학교 교사(1945. 10. ∼ 1948)가 된 그는 11월에 윤이상, 김춘수 등과 같이 통영문화협회를 조직하고 그 회장이 되어 문화유치원을 포함하는 4동의 적산을 인수하고 연극 부락 중심의 예술 활동을 벌였다. 39세 때는 제 1회 시인상을 받았으며 41세 때인 1948년엔 청년문학가 협회 회장직을 맡아 반공 민족 문학의 선두에 서기도 했다. 50년 북한 남침으로 부산으로 피난, 그 곳에서 문총 구국대 조직에 참여, 3사단에 종군하여 원산, 함흥 등지로 병사들과 함께 전쟁의 아픔을 겪었다. 이 경험으로 잘 알려진 시 보병과 더불어(50), 돌아오지 않는 비행기(50. 4.) 등이 쓰여졌다.
48년에 교직을 그만두었으나 54년에 거창 안의중학교 교장(54∼55)이 된 이래 경주고(55∼61), 경주여중(61∼62), 대구여고(62∼64) 등 사학의 교장으로 있다가 경남 문교 사회국장이던 오복근의 주선으로 경남여고(64) 교장으로 옮겼다가 남여상(64∼67) 교장 재임 때 1967년(60세) 2월 13일 좌천동 앞길에서 자동차 사고로 병원으로 운반 도중 사망하였다.
2. 시대적 흐름에 따른 작품경향
가) 일제 시대
일제 시대에 나온 청마의 시집은 『청마시초』한 권뿐이나「깃발」,「일월」,「생명의 서」,「바위」등 흔히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이 시기에 쓰여 졌다. 특별한 기교가 없으면서도 남성적 당당한 운율을 지니면서 시적인 긴장과 탄력을 유지한 작품들로 강인하고 줄기차고 야성적 생명력을 시로 노래하였다.
나) 정부 수립 전후( ∼ 6.25 사변 직전)
이 때 나온 시집은 『생명의 서』, 『울릉도』, 『청령일기』등 3권의 시집이 있다. 시대적으로는 남북이 분단된 채로 대결과 혼란이 양상을 심화되는 시기였다. 문단에서도 8.15뒤 좌익 계열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된 민족진영의 문인단체. 회장에 정인보, 부회장에 박종화, 설의식, 채동선 등이 주동이 되어 1946년 3월 13일에 결성되었다. 전조선문필가협회의 영향으로 1946년 4월 조선청년문학가협회가 결성되었고 1947년 2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로 통합 발전되었으며 1949년 12월 한국문학가협회에 통합되었다.
전조선문필가협회와 1945년 12월 6일에 결성된 좌익계 진보적 문학운동단체. 카프의 뒤를 이어 8.15 해방 직후에 활발한 활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