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정치이념과 우리의 나아갈 길
초,중,고등학교를 나오며 세종대왕의 업적에 대해 배워온 세종대왕의 모습은 어진 임금 뿐 아니라 진정한 한 나라의 가장 ‘높으신 분’이다. 22살의 젊은 나이에 임금이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이 매우 깊으셔서 존경받을만 했고, 학문 뿐만 아니라 음악, 과학 등 전 분야에 걸쳐 남들보다 늘 뛰어났던 타고난 현인이셨다. 이번 세종대왕의 국가경영 이라는 과목을 수강하며 세종실록에 실린 사건들을 통해 세종대왕의 경영방법이나 정치사상 등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세종대왕이 즉위한 때는 조선 초기였고 건국 이래 27년째 되는 해였다. 이 시기에는 대내외적으로 나라의 안정이 완전히 이룩되지 못한 때였다. 그러한 조선을 세종대왕은 뛰어난 내정과 외교정치로 다스리셨고 훈민정음의 창제를 비롯해서 문화의 창달에 위대한 업적들을 남기셨다. 이같은 업적들에서 세종대왕의 위대한 정신과 이념을 본받아 실천하는 것이 우리 후손들의 해야 할 일일 것이다.
2. 본론- 세종대왕에 대한 고찰
세종대왕의 정신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교과서에서도 배웠던 애민정신, 자주정신, 과학정신이다.
인간 존중의 철학이자 인도주의 정신인 애민정신. 세종대왕은 단순히 백성을 사랑한다는 임금이라는 위치적인 사상을 넘어서서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을 이해하려하고, 또 도우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훈민정음 서문: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말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하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도 그 뜻을 표현해 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므로 내가 이를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드니 온 백성이 쉽게 익혀서 언어 문자 생활을 편하게 함에 있다’
이 훈민정음 서문이야말로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했고, 아꼈던 세종대왕의 마음을 나타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유학자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백성들의 사정을 딱하게 생각해 훈민정신을 창제하신 것은 당시의 백성의 사정을 누구보다 먼저 생각하신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들 수 있는 세종대왕의 정신은 자주정신이다.‘세종대왕의 정치철학은 주체에서 우러난 자주정신이다’라고 한다. 세종 대왕은 자신의 주체를 세우고, 그것을 정신적 뒷받침으로 삼아 조선을 정치적, 물질적으로 진흥시켰다. 세종 때의 외교정치를 보면 명나라와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는 한편, 영토를 확장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북으로의 국경확장이나 남으로의 대마도 정벌 등에 있어서도 강경책과 회유책을 번갈아 쓰는 등 문무에 모두 능했다.
세종대왕은 그토록 스스로가 영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늘 신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 하셨다. 신하들의 말이 타당하면 그 뜻을 채용하려 노력하셨다. 또 당장의 실리를 위해 정의를 버리지 않으셨고, 정의를 위해 맹목적으로 실리를 저버리지도 않았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면서도 보수적인 면을 동시에 지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