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PlatonBC429~BC347
플라톤은 그의 정신적 스승인 소크라테스(469 - 399 BC)를 기원전 407년경 만나게 되는데, 이때 소크라테스의 나이는 62세 플라톤은 20세 이었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문하생이 되어 그의 가르침을 받고, 그의 행적을 보고, 또한 문하생들의 입을 통하여 소크라테스의 과거의 행적을 듣고 배운 기간은 약 8년간에 불과하다.
그 후 403년에 민주정이 다시 수립되자, 플라톤은 다시금 정치에 참여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399년 그의 스승이자 친구인 소크라테스가 새로운 권력층에 의해 처형당하는 사건은 그로 하여금 아테네의 정치적 개혁의 가능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플라톤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 스스로가 정치적 실천에도 현실적으로 직접 개입할 때에만이 그의 정치철학을 당당하고 설득력 있게 대변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바로 이 신념이 시라쿠사에서 시도한 그의 정치활동의 동기가 되었으나, 그 활동 자체는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그는 390년에 이집트로 학술 탐구를 위한 여행을 떠났으며, 퀴레네에서는 수학자 테오도로스를,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타렌툼 출신인 아르키타스를 위시하여 다른 여러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어떤 특별한 목적 없이 시라쿠사로도 여행하였으며, 그곳에서 그는 당시 그곳을 통치하던 디오니시오스 1세의 젊은 처남 디온을 그의 도덕적, 정치적 이상에 대하 지지자로 얻게 된다. 그러나 정치의 여러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디오니시오스 1세의 부정의함과 독재를 비판하게 되자, 그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체류는 디오니시오스 1세가 플라톤을 노예로 팔아넘김으로써 끝났다고 전해진다. 에기나 섬의 노예시장에서 몸값을 치르고 자유의 몸이 되어 돌아온 후, 그는 영웅 ‘케카데모스’의 이름으로 불리는 아테네 근교의 한 곳에 학원을 설립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아카데미아이다.
디오니시오스 1세 사망(BC 367년) 후, 디온은 디오니시오스 2세로 하여금 플라톤을 스승이자 정치적 곰문의 자격으로 초빙하도록 권유하였다. 그러나 초빙을 받아 온 플라톤은 그 젊은 통치자의 주위에서 그에게 악영향을 끼치려는 무리들 때문에 자신의 뜻을 실현시키지 못하였다. 반면에 디온은 대역 모반 혐의를 받고 시칠리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디오니시오스 2세로부터 재차 간절한 초청을 받은 플라톤은 BC 361년에 다시 시라쿠사로 향한다. 그러나 이 여행도 참담한 실패로 끝난다. 디오니시오스와 플라톤이 추방당한 디온을 두고 서로 다투는 것으로 인해 플라톤이 시라쿠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가 아르키타스의 도움을 받고서야 비로소 다시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후 플라톤은 현실정치에 대한 관심을 버렸으며 아카데미에서 학문연구에 전념하다가 80세에 그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2. 주요저술
플라톤에 의해 집필된 저작은, 13편의 서간문(그 중 제6,7,8 서간문은 플라톤 자신의 것이다.)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화편들이며 이들은 모두 보존되어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저자 연대순으로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초기 대화편들은 여러 가지 덕목들에 대한 정의 구함을 주제로 하고 있다. 주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그대로 전하는 경향이 강하다.《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라케스》, 《뤼시스》,《카르미데스》,《에우튀프론》,《소 히피아스》,《대 히피아스》,《프로타고라스》,《고르기아스》,《이온》 등이 있다.
중기 대화편들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면서 ‘형상이론’을 제기한 대화편들이 많다.《메논》,《파이돈》,《국가》,《향연》,《파이드로스》,《에우튀데모스》,《메네크세노스》,《카라튈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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