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 : 적당한 크기와 두께를 가진 점토판을 만들어 양면이 굳기 전에, 갈대나 나뭇조 각을 뾰족하게 깎은 펜으로 설형 문자를 적어넣는다. 이것을 햇볕에 말려 가마에 넣고 구우면 돌처럼 굳어진다. 불에 타지 않고 물에 젖지 않으며, 동물로부터의 해도 막을 수 있고, 땅 속에 묻어 두면 전화도 피할 수 있으며, 또 깨어진다 해도 파편을 모으면 복원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 지방에서는 수천 년에 걸쳐 점토판 서 적문화가 성하였다.
고대의 유적발굴에 의하여 밝혀진 바로는 유명한 아슈르바니팔왕의 도서관에만도 2만 부에 달하는 점토판 서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점토판 서적은 무겁고 운 반하기 불편하며, 또 재료의 요청에 의해 생겨난 설형문자도 읽기 쉬운 아람 (Aram)문자에 눌려, 결국 점토판 서적은 과거의 것이 되고 말았다. 같은 동방의 일각인 이집트에서 더 편리한 형태의 서적이 발명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이집트
5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약 5,000년간 지중해 연안 문화국가에서 서적의 재료가 되었던 파 피루스는 높이가 2 m나 되는데, 야자나무나 대나무와 같이, 그 성장의 각 단계에서 매우 용도가 광범위했다. 그러나 역사에 남을 최대의 역할은 뭐니뭐니해도 종이에 가까운 서적 재료가 된 점일 것이다.
방법 : 파피루스의 줄기를 째면 길이 30 cm 정도의 마디와 마디 사이에 목수질이 나오는 데, 이것을 빼내서 잘게 쪼개어 한 줄로 늘어놓은 다음 다시 그 위에 같은 것을 한 줄 직각으로 놓고 물을 뿌려 아래위 두 장을 밀착시킨다. 그리고 중량을 가하고 햇볕에 말려 망치 ·상아 ·조개껍데기 ·속돌 등으로 닦으면 종이와 흡사한 것이 된 다. 그 한 장의 나비는 38 cm 정도에 이르는 것도 있으나, 25 cm 내외의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 소아시아
근년에 발굴된 유프라테스강 상류의 로마 유적에서 가죽종이로 된 문서가 출토 되었는 데, BC 200년경에 이미 아시아에서 가죽종이를 사용한 사실이 증명되었다. 즉, 당시 소아 시아가 양 ·염소 ·소 등이 많이 생산되는 사실에 주목하고 옛날부터 해오던 방식과는 달 리 이들 동물, 특히 새끼양이나 송아지의 가죽을 서사의 재료로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결과 파피루스처럼 째질 염려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 질기고 빛깔도 흰 양질의 서적 재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가죽종이가 파피루스를 완전히 몰아내는 데는 다시 수 백년이나 걸렸다.
- 로마
예로부터 베헝겊에 쓴 문헌도 있었다고 하나, 라틴문학의 전성기에는 여전히 파피루스 권자본이 주류를 이루었다. 권자본 끝에 축을 달고 축에는 손잡이를 달아 장식효과를 내 기도 하였으며, 가죽을 아름답게 염색하여 권자본을 보호하기도 하였다. 그 뒤 1세기에 이 르러 가죽종이책이 많이 유입되었으나, 주로 글의 초안을 잡는 경우나 비망록을 쓸 때만 사용하였고, 품위 있는 서적은 파피루스 권자본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한편 납판서 적이 발명되었는데, 이는 너도밤나무 등 강한 성질을 가진 나무의 널빤지를 책모양으로 몇 장 포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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