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기원
먼저 한국과 일본의 대략적인 술문화에 대한 비교에 들어가기 앞서서 술에 대한 역사를 나름대로 조사해 서술하고자 한다.
언제부터 술이 있었는지에 대한 것은 사료가 없기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추측으로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면서 술은 이미 존재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과실의 독특한 성질은 과실주를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과일은 조금이라도 상처가 있으면 과즙이 스며나오고 과실 껍질에 붙어있는 천연 효모에 의하여 술이 된다. 이러한 현상이 우연히 발견되어 술이 탄생한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선사시대에도 술을 이러한 자연적인 방식으로 빚어 마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메소포타미아’지역의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기원전 70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판을 발견하면서 맥주의 기원을 짐작할 수가 있었는데, 그 석판에 맥주 만드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은나라때 ‘酒’라는 글자가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술의 역사는 인간이 농경사회로 정착생활을 하면서부터 점차 발전하여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조선 이후 부여시대는 일상생활 속에서 술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11년에 “지주(旨酒)”라는 말이 나오고 위지동이전에는 “고구려 사람은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라고 하였으며 중국의 유명한 곡아주의 전설에도 고구려 여인의 사연이 얽혀있어 중국과 비슷한 수준의 술 빚는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던 것만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당나라의 어느 시인이 “한 잔 신라주의 기운,새벽바람에 쉽게 사라질 것이 두렵구나”라고 읊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 우리 술의 명성은 중국에까지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한편 백제사람 수수보리는 일본 왕 오진때 술 빚는 방법을 일본에 전했다고 한다. 이 때 일왕은 “수수보리가 빚어준 술에 내가 취했네.마음 달래주는 술,웃음을 주는 술에 내가 취했네.”라고 노래하였다.
한국 술의 종류
탁주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술은 탁주, 즉 막걸리이며 술에 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삼국사기”이다. 막걸리라는 이름은 막거른 술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고려때엔 막걸리용 누룩을 배꽃이 필 때 만든다고 하여 이화주라는 낭만적인 이름이 붙었고,이외 맑지 않은 술이기에 탁주라고 부르기도 하고 식량대용 또는 갈증해소로 농민들이 주로 애용해 왔으므로 농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곡주의 청탁(淸濁)은 숙성주의 여과에 의해 구별되며 막걸리는 탁하게 양조한 흰백색의 주류로서 좋은 막걸리는 신맛,짠맛,쓴맛,매운맛,떫은맛이 잘 어울리고 적당한 감칠맛과 청량감이 있어야 한다. 또한 주정도수는 6%로 적당한 도수이어야 하며 영양분이 풍부해야 좋은 막걸리라고 할 수 있다. 막걸리 이름은 다양하여 탁주,재주(滓酒),회주(灰酒),백주(白酒),합주(合酒),탁배기,가주(家酒),농주(農酒),이화주(梨花酒),부의주(浮蟻酒)등으로 불리워진다. 일반적으로 숙성주를 여과하여 약주를 제조한 후 막걸러 막걸리를 만들기도 하나 약주를 만들지 않고 순수한 막걸리만을 제조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탁주류에도 일반탁주와 특별탁주가 생기게 되었다. 일반 탁주류는 밀누룩이 쓰이고 특별 탁주류에는 쌀누룩을 사용하는 것이 차이점이다.(현재 막걸리는 주로 쌀누룩을 사용하고 있다.) 일반탁주는 탁배기라고 불러왔다.
흔히 말하는 막걸리라는 것은 양조후에 술을 떠내고 나머지에 물을 둘러 얻어진 것을 말한다. 막걸리가 우리의 역사를 담고 있는 술임에는 틀림이 없다. 막걸리의 청량미는 땀을 흘리고 일한후에 갈증을 멎게 하는 힘도 있어 농주로써 애용되어 왔다.
사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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