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본론
1. 흑선 내항 (黑船 內港)
일본의 근대화를 알리게 되는 그 시작은 가에이(嘉永) 6년(1853) 6월 3일, 일본 우라가(浦賀. 현재의 가나가와 현) 해안에 출현한 4척의 흑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미국의 페리 제독이 배를 이끌고 일본으로 와 도쿠가와 막부에 개국통상조약 체결을 요구 한 것으로, 당시 폐쇄적인 일본의 국가 분위기에 있어서 이것은 커다란 충격을 주게 된 사건이었다. 이것이 일본의 근대사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흑선내항 사건이다. 이때 막부는 치바(千葉), 시나가와(品川) 등 군영청(軍)을 갖고 있던 영주들에게 해안 경비를 명하였고, 각 영주 들은 자신의 번에 소속된 무사들을 모아 우라가(浦賀) 해안에 집결 시켰다.
그러나 대포가 없어 절의 종을 떼어 해안에 설치하고, 대나무를 쥐게 하여 총으로 착각하게 하라는 상사(上士)들의 모습에 향사(鄕士)들은 도쿠가와 막부의 무력함을 깨닫게 된다. 페리는 당시의 미대통령 필모어(M.C.Fillmore)의 친서를 들고 왔었다. 캘리포니아 금광 발견을 계기로 본격적인 서부 개발에 나선 미국은 등유나 초를 많이 필요로 하게 되어, 포경업이 중요산업이 되자 포경선의 기항지로서 일본을 개국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도쿠가와 막부는 이듬해의 봄까지는 답변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고, 페리와 흑선은 10일 만에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봄, 페리 제독은 8척의 함대를 이끌고 우라가 앞바다에 다시 나타나게 된다.
당시 대부분의 유력한 다이묘(大名)들이 반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페리 제독의 요구에 도쿠가와 막부는 개국(開國)을 결의, 요코하마(浜)에서 화친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일본은 미국선박에게 식품, 연료, 식수를 공급하고, 시모다(下田)항과 하코다테(箱館)항을 개항 할 것, 미국 영사가 일본에 주재하며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최혜국 대우를 하는 것 등이 그 내용이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친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정책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때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존왕양이(尊王攘夷)사상을 외치게 된다. 존왕양이(尊王攘夷), 즉 천황을 중심으로 뭉쳐 오랑캐를 몰아내자고 하는 이 사상은 훗날 도쿠가와 막부를 붕괴시키는 초석이 된다.
이때부터 일본은 개개인의 사상이 갈래갈래 갈라져 폭풍과도 같은 시기를 거치게 된다.
정치이념으로서 천황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존왕(尊王)과 막부를 강화해야한다는 좌막(佐幕), 개국이념으로서 서양인을 몰아내자는 양이(攘夷)와 서양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개국(開國), 수단으로서는 온건파와 주전파 등으로 일본은 전국시대보다도 더 혼잡한 양상을 띄게 된다. 단 8척의 흑선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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